재벌그룹들이 소유한 공익법인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재벌의 공익법인들이 오너의 지배력 강화나 편법상속에 동원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특정기업이 주식을 공익법인에 기부할 경우 해당기업 주식의 5%(성실공익법인은 10%)까지만 비과세되는데 정부가 이를 20%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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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공익법인제도 개선방향' 공청회 모습. |
이에 따라 재벌들의 편법상속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국책연구원인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22일 열린 ‘공익법인제도 개선방향’ 공청회에서 윤지현 서울대 교수는 “공익법인이 보유 중인 재산의 일정부분을 반드시 공익활동에 쓰게 하는 ‘의무지출제도’를 도입한다면 공익법인의 주식보유한도를 20%까지 높이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민간재단은 특정기업의 주식을 20%까지 보유할 수 있지만 기부받은 투자자산의 5% 이상은 반드시 공익적 활동에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책연구원이 주최한 공청회 등을 통해 향후 제도 개선의 밑그림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윤 교수의 발언은 주목된다.
윤 교수는 “발제 내용과 정부의 의견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이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들의 편법상속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의 공익법인 기부 주식에 대한 비과세 한도를 낮추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공익법인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주식을 선한 의도로 공익재단에 기부했다가 증여세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실제로 독지가 황필상씨는 평생 모은 전재산 200억 원을 구원장학재단이라는 공익재단에 기부했지만 현재 고액체납자 명단에 올라 있다. 황씨가 10년 전 회사 주식을 이 장학재단에 기부한 게 화근이었다. 황씨의 체납액은 애초 부과된 세금 140억원에 가산세까지 더해 현재 244억원까지 불어났다.
윤 교수의 주장은 기업이 공익법인에 주식기부를 활성화하되 비과세 받은 만큼을 반드시 사회를 위해 쓰도록 하면 재벌의 편법승계 부작용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박두준 가이드스타 사무총장도 이날 “과거에 만들어져 현재는 필요없는 것들이 계속 규제로 남아 있다”며 “기준을 완화하면 기부 파이(총량)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에서는 주식 출연 비과세 한도를 현행 5%에서 20%로 확대하되 출연 주식에 대해선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박용진 더민주 의원 측은 “비과세 출연 한도를 높여 선의의 기부자가 세금폭탄을 피하도록 하고 의결권을 제한해 재벌그룹이 공익재단을 악용하는 것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청회 토론자로 나선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주식보유한도를 풀어주되 의무지출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은 자칫 재벌들에게 ‘꿩 먹고 알 먹기’거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며 “공익법인이 기부받은 주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계열사의 기부금을 받아 의무지출기준을 맞추면 재벌가가 실제 지배하는 보유주식만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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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현행법에서 공익법인 비과세로 기부받는 주식의 한도를 정한 것은 공익법인이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재벌들이 문화재단 같은 공익법인을 만들어 계열사를 우회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 5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그룹 승계 절차를 공식화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2.18%, 삼성물산 지분 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도 삼성생명 지분 4.68%, 삼성화재 지분 3.1%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두 재단을 통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의견 수렴을 거쳐 7월 말 발표할 예정인 세법 개정안에 공익법인제도 개선 방안을 담을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