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을 향한 압박을 이어가는 가운데 유독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장의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칼끝이 다음은 어디를 향할지 이목이 쏠린다. 사진은 원 장관이 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의 혁신 작업에 공을 들이는 가운데 유독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기관장의 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산하 공공기관을 향한 고강도 혁신 주문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다만 '이 사람이 아닌 저 사람인 이유'를 제대로 내놓지 못해 정권교체에 따른 단순 물갈이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1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에 대한 원 장관의 이른바 혁신 작업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 장관은 일찍부터 다른 부처 장관과 비교해 신속하고 강도 높게 산하 기관장에 혁신을 요구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일찍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21일 국무회의에서 “과하게 넓은 사무공간을 축소하고 너무나 호화로운 청사도 과감히 매각해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지 않나”며 공공기관을 향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원 장관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고 이틀 뒤인 6월23일 국토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국토부 산하 모든 공공기관은 일주일 내에 자체 혁신방안을 제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7월5일에는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이 낸 혁신안을 놓고 “본질적인 것이 빠져 있다”며 ‘퇴짜’를 놓으며 국토부가 혁신 작업을 주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과 원 장관이 추진하는 공공기관 혁신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밀어내려는 행보라고 본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정치적 압박을 통한 기관장 교체가 형사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만큼 과거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원 장관은 3년 남짓한 경력이기는 하지만 사회생활를 검사로 시작한 때문인지 산하 공공기관장의 혁신에 감찰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를 상대로는 간부들이 출장지에서 골프를 친 사실을 들어 ‘기강해이’ 등을 문제 삼았다. 한국도로교통공사에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값 인하 여부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감찰을 시작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는 실장급 간부가 특정 건설회사의 신용등급을 근거 없이 올려 줬다며 형사고발 및 기관장 개입 가능성을 국토부 차원에서 언론에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 부처가 산하기관을 감찰하면서 결론이 나기 전에 관련 내용을 공개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결국 8월에는 김현준 토지주택공사 사장, 9월에는
김진숙 도로공사 사장, 10월에는 권형택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이 자진사퇴했다.
현재까지 주요 공공기관 가운데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이 임기를 마치기 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사례는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의 3건 외에는 없다.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KLI) 원장 등이 사퇴했지만 이들은 공공기관장이 국책 연구기관장이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보도자료를 통해 “과거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했던 원 장관이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위를 이용해 임기가 보장된 산하 기관장들의 사퇴를 사실상 겁박한 결과 이런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고 원 장관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원 장관은 다른 주요 국토부 산하 기관을 상대로 감찰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토부 장관 이후'를 꿈꾸고 있는 원 장관으로서는 국토부에서 확실한 정책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산하 공공기관 장악은 중요한 과제이다.
원 장관의 다음 주요 목표는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 등이 유력해 보인다.
앞서 원 장관은 지난 6월2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혁신이 필요한 공공기관은 토지주택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라고 구체적으로 특정 공공기관을 꼽기도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은 이미 물러났고, 나희승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학계 출신으로 비교적 정치색이 적은 인사다. 이에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원 장관의 다음 목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사장은 국토부 관료 출신으로 민주당 공천으로 지난 총선에서 출마한 적도 있을 만큼 정치색이 짙은 인사다. 현재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이후 국회의원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원 장관은 이미 지난 8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과장급 직원의 취업 멘토링 대학생 성추행 시도 사건을 놓고 “관련 규정 여부를 점검하고 이와 관련한 실태조사를 통해 강도 높게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스카이72골프장 관련 문제를 놓고 “분쟁을 알고 있으며 국토부 차원의 조사를 할 수 있으면 조사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