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두 회사의 합병설은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불거졌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을 이끌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직접 합병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이번 합병설은 무게가 남다르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생존을 위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될까?
◆ "규모의 경제가 가장 중요, 합병 필요하다"
14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합병했을 때의 실효성을 두고 업계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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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 |
두 회사의 합병을 주장하는 측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류는 본질적으로 인프라가 중심이 되는 사업이다. 인프라를 갖추고 한 번에 많은 물량을 실어 나를수록 유리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물류업은 상위 몇 개 회사 위주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친다.
해운업도 국가별로 상위 대형해운사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로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회사의 합병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은 규모의 경제를 설명할 때 자주 오르내린다.
머스크라인은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리며 세계 1위 해운사로 성장했다. 머스크라인은 다른 해운사들이 불황에 신음하는 사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을 대폭 절감했다. 그 덕에 여전히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머스크라인은 1만4천 TEU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28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위치한 지사를 통해 네트워크를 확보해 운영효율성도 끌어올렸다.
세계 주요 해운사들이 장기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수합병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점도 두 회사의 합병설에 힘을 보탠다.
세계 5위 해운사인 독일의 하팍로이드는 2014년 칠레의 해운사 CSAV를 인수하며 덩치를 키웠다. 하팍로이드는 현재 쿠웨이트의 해운사 UASC와 합병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중국의 양대 해운사인 COSCO와 CSCL이 합병했고 세계 3위 해운사인 프랑스 CMA-CGM이 싱가포르의 NOL을 흡수합병하며 점유율을 높였다.
이 해운사들은 합병 이후 중소형선박을 정리하고 1만4천 TEU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이용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합병하면 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5위의 해운사가 된다. 프랑스의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세계 물동량 순위는 5월 말 기준으로 각각 8위, 15위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일단 합병해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해운동맹에서 큰 목소리도 내면서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당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해운업 업황이 회복되면 시너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합병해도 시너지 전혀 없어, 덩치만 키울 뿐"
합병을 반대하는 측은 두 회사의 사업구조와 운항노선이 겹쳐 합병하더라도 시너지를 누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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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 |
두 회사의 합병은 외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각각의 회사가 보유한 네트워크 등 무형의 자산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모두 컨테이너선사업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선박의 크기는 물론이고 미주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노선배치도 비슷하다. 이 때문에 시너지는 누릴 수 없는 상황에서 덩치가 커지는 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본다.
합병하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두 회사가 같은 해운동맹에 속할 경우 오히려 각각 다른 해운동맹에 속해있던 과거보다 물동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진해운은 최근 새로운 해운동명 ‘디 얼라이언스’에 합류했고 현대상선도 같은 해운동맹에 합류하기 위해 해운사들과 논의를 벌이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합병할 경우 두 회사 가운데 하나가 사라져 기존 고객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며 “겹치는 항로와 인력 등을 대규모로 조정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현재와 같은 양강체제가 지속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운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수출입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구조와 해운동맹 중심의 해운업, 부산항의 환적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양사체제 유지가 필요하다”며 “국적 해운사가 1개로 줄어들면 그만큼 경쟁력과 수십 년에 걸친 노하우도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외형만 키우는 합병보다 초대형선박을 갖추는 등 두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는 쓴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초대형선박을 늘리면서 비용절감에 힘쓰는 동안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투자 여력이 없어 초대형선박을 갖추지 못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해운사들은 높은 금리와 자금부족 등으로 초대형선박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