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오후 경기 분당신도시 한솔마을 5단지 안에 리모델링 사업 찬성 측과 반대 측이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윤석열 정부는 수도권 1기 신도시의 재정비 사업을 공약했지만 현실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마디로 난리다. 벌집을 쑤셔놓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얘기다.
윤석열 정부가 최근 발표한 ‘8.16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 중 첨예한 논란에 휩싸인 게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관련 방안이다. 윤 정부가 이와 관련해 발표한 건 아래의 딱 한 줄이다.
‘1기 신도시의 경우, 연구용역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할 예정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화가 치미는 건 당연해 보인다. 2024년까지 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수립할 것이라는 윤 정부의 발표는 당장이라도 파격적 용적률을 받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1기 신도시 주민들의 기대를 ‘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1기 신도시 용적률을 최고 500%까지 높여 10만여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했다. 현재 1기 신도시의 용적률은 200% 안팎이다.
‘8.16’ 대책 발표 뒤 1기 신도시 주민들 여론이 비등하자 대통령실이 황급히 나서 최대한 빨리 1기 신도시 재정비에 나서겠다며 진화를 시도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은 19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일부 언론에서 '8·16 국민주거안전대책' 발표 이후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이) 당초 발표보다 지연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대통령께서 공약하고 지난 5월2일 고양에 가셔서 1기 신도시와 관련, 최대한 신속한 추진을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느냐는 게 핵심"이라고 발언했다.
최 수석은 이어 "도시재생수준의 신도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정비하는 사업은 통상 5~10년이 걸린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약속했기 때문에 정부 출범 이후 TF를 만들어 최대한 빨리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며 "1년6개월~2년 내에 마련하겠다는 것이 저희가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가장 신속한 방법"이라고도 덧붙였다.
최 수석뿐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민의힘 의원들과 각료들이 한자리에 모인 연찬회에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보자마자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 빨리 만들어주세요"라고 주문했다. 원 장관은 "잘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도시 재창조 수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이 어려운 까닭들
이렇듯 윤석열 정부가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에 총력을 경주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윤 정부의 의지만으로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에는 난관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우선 이른바 ‘1기 신도시 특별법’이 여소야대의 의회 상황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입법을 떠나 극복하기가 한결 어려운 난관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는 점이다.
분당·산본·일산·중동·평촌 등 1기 신도시는 최초 입주일 기준으로 하면 30년이 경과했거나 곧 30년이 도래하는 공동주택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분당과 일산을 제외한 1기 신도시 모두의 용적률이 200%를 상회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1기 신도시 입주민들에게 파격적 용적률 특혜 등을 통해 본인 부담금을 최소화하며 재건축사업을 할 수 있느냐가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러다 보니 용적룔 500% 이야기가 대선 당시 공약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1기 신도시에 용적률 500%를 부여하는 건 해결하기 어려운 두 가지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하나는 1기 신도시 이외의 지역과의 형평성 이슈다. 즉 1기 신도시에 용적률 500%를 부여하면 다른 지역에도 같은 용적률을 부여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용적률은 공동의 재산이라는 성격과 미래세대의 재산이라는 성격이 중첩되어 있는 것으로 선심쓰듯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1기 신도시에 용적률 500%를 선물하듯 부여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용적률을 달라고 할 것이며 그 집합적 요구를 정부가 외면할 명분이 없다. 모든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용적률 500%를 부여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면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1기 신도시에 용적률 500%를 부여할 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도시기능의 붕괴다. 1기 신도시 안에는 대략 30만호의 주택이 들어가 있고 거기에 상응하는 상하수도, 전기, 가스, 도로, 통신, 철도 등의 기반시설 및 편의시설 등이 계획되고 건설됐다.
그런데 만약 1기 신도시에 용적률 500%를 부여해 대략 50~60만호의 주택이 들어선다면 30만호를 예상하고 구축됐던 도시기반시설과 편의시설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를 감당할 수 없고, 따라서 1기 신도시는 도시로서의 기능이 마비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라도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을 철회해야
위에서 살핀 것처럼 용적률 500%를 전제로 추진되는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1기 신도시 주민들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추진을 철회하고 리모델링 위주의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이 옳다.
또한 1기 신도시 주민들도 용적률 500%라는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리모델링 등의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사행심에서 벗어나야 현실적인 대안들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