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성능은 패키징이 좌우, SK하이닉스 미국에서 패키징 역량 키운다

▲ SK하이닉스가 반도체분야의 새로운 먹거리를 후공정으로 분류되는 ‘패키징’에서 찾고 있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이미지. < SK하이닉스 뉴스룸 >

[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가 반도체분야의 새로운 먹거리를 후공정으로 분류되는 ‘패키징’에서 찾고 있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고 속도가 빨라지자 발열 등 해소해야 하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패키징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전공정에 집중했는데 미국에 패키징 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스템반도체까지 포함하는 패키징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고성능의 초소형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패키징 기술의 중요성이 나날이 부각되고 있다.

반도체 패키징이란 말 그대로 반도체를 포장하는 작업으로 여러 개의 반도체 칩을 하나로 이어붙이고 전기선을 외부로 연결해 완제품으로서 성능을 발휘하게 만드는 공정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반도체는 IP기업(설계자산)⟶팹리스(설계)⟶파운드리(생산)의 전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뒤 후공정(패키징‧테스트)을 통해 최종 완성된다.

그동안 패키징은 반도체 공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반도체 성능은 설계와 생산 기술력에 의해 좌우됐기 때문에 패키징은 단순히 반도체 제품을 출하하기 위한 포장 작업 정도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공정 미세화가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이를 보완할 패키징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 반도체산업을 상징하는 인물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최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 팹리스 시장 규모가 1천억 달러,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가 1500억 달러인데 패키징 시장 규모가 그에 못지않은 1천억 달러나 된다”며 “향후 10년 안에 후공정(패키징 포함)이 전공정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물론 SK하이닉스도 그동안 반도체 패키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중국 충칭에서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SK하이닉스의 패키징 영역은 메모리반도체에 국한됐으며 첨단 생산공정에 집중하기 위해 자체 패키징보다는 외주 비율을 훨씬 높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패키징 기술이 미래 반도체 경쟁력으로 부각되면서 SK하이닉스도 최근 패키징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게다가 SK하이닉스는 8월23일 8인치 파운드리 기업인 키파운드리를 인수하는 등 시스템반도체 경쟁력도 끌어올리고 있는 만큼 패키징 사업도 향후 시스템반도체 분야로 확대될 공산이 크다.
 
반도체 성능은 패키징이 좌우, SK하이닉스 미국에서 패키징 역량 키운다

▲ SK하이닉스 직원이 반도체 P&T(패키징&테스트) 단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SK하이닉스 뉴스룸 >

SK하이닉스는 이르면 2023년 상반기 미국에서 반도체 패키징 공장 부지를 선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는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되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패키징 공장은 2025~2026년부터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약 1천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패키징 설비투자도 다각화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에게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 반도체분야에서 중국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엔비디아, AMD, 퀄컴 등 주요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가 미국에 있다는 점도 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생산과 후공정을 거쳐 결국 주문한 고객사(팹리스 등)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이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반도체 패키징 분야는 현재 대만(52%)이 가장 앞서고 있고 그 뒤를 중국과 미국이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그동안 전공정에 역량을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후공정으로도 자원의 일부를 투입하고 있는 추세”라며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소단박(가볍고 작고 짧으며 얇은 것) 제품이기 때문에 SK하이닉스가 국내에서 만든 반도체를 미국에서 패키징하고 고객사에게 인도하는 것이 비용적으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를 비롯해 TSMC, 인텔 등도 모두 반도체 패키징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파운드리뿐만 아니라 패키징에서도 가장 앞서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TSMC는 일본에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해 후공정 기술을 집중적으로 개발한다. 인텔은 올해 미국 뉴멕시코주에 35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패키징 시설을 짓고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올해 6월 CEO 직속 부서로 ‘어드밴스드 패키징사업화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며 패키징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주기 시작했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의 약점은 비메모리,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밸류체인, 설계 등이며 비메모리는 설계, 후공정, 고객대응 능력 확보가 중요하다”며 “한국 기업들은 약점을 보완해줄 전략적 협력 파트너를 찾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