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양행이 그동안 온라인 창작 뮤지컬을 제작한 데 이어 새로운 뮤지컬에 24억 원을 투자했다. 유한양행이 2020년 8월 공개한 뮤지컬 '새벽이 온다'의 한 장면. <유튜브 채널 '유일한의 청년독립단'> |
[비즈니스포스트] 뮤지컬을 통해서 광복절의 의미와 독립운동가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는 일에 노력해온 기업이 수십억 원을 투자해 새로운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
여느 엔터테인먼트기업이 아니라 국내 유수의 제약사인 유한양행 얘기다.
2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올해 초 ‘암호명케이문화산업전문 유한회사’라는 법인에 24억 원을 투자했다.
암호명케이문화산업전문은 지난해 9월 ‘윌로우문화산업전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됐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설립 당시 이병만 유한양행 약품사업본부장 부사장이 1인 이사를 맡아 유한양행이 법인 설립부터 투자까지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회사 간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암호명케이문화산업전문의 역할은 제약바이오와 전혀 관련이 없다. 등기부등본에는 뮤지컬 ‘암호명케이’의 기획, 투자 조달, 투자 제작비 관리, 집행 및 정산, 수익분배 등이 이 법인의 사업목적이라고 나와 있다.
즉 유한양행은 ‘암호명케이’라는 뮤지컬을 제작하는 데 24억 원을 지원한 셈이다.
일반적인 제약바이오기업 입장에서 뮤지컬은 전혀 생소한 분야겠지만 유한양행에는 아니다.
유한양행은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는 취지의 콘텐츠들을 유튜브 채널 ‘유일한의 청년독립단’을 통해 제작해왔다. 여기에는 뮤지컬이 포함됐다.
2017년 개설된 ‘유일한의 청년독립단’이 가장 먼저 선보인 콘텐츠는 광복절을 맞아 서울 명동에서 찍은 플래시몹 ‘나의 독립을 선포하라’였다. ‘나의 독립을 선포하라’는 공개 후 현재까지 조회수 134만 회를 기록하는 등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유한양행의 ‘광복 콘텐츠’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2020년 8월 ‘새벽이 온다’, 2021년 8월 ‘위국헌신’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담은 온라인 창작 뮤지컬이 유일한의 청년독립단 채널에 차례로 공개됐다.
다만 이런 콘텐츠들의 외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뮤지컬에 미치지 못했다. 가장 분량이 긴 ‘위국헌신’의 영상이 7분48초에 불과한 단편이다.
‘암호명케이’는 20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고려하면 이보다 더 본격적인 뮤지컬 규모를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극장에 오르는 창작 뮤지컬의 100회 공연 기준 제작비가 10억~20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명케이 프로젝트가 문화산업전문회사를 통해 제작된다는 점도 문화콘텐츠에 대한 유한양행의 ‘진심’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 문화산업전문회사 구조. <한국콘텐츠진흥원> |
문화산업전문회사는 2006년 국내에 도입된 제도로 특정 문화콘텐츠 제작을 위해 설립되는 특수목적법인이다.
문화산업전문회사는 각 업무 영역별로 사업관리자, 자산관리자, 제작사 및 배급사, 투자자를 선정해 업무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한다. 프로젝트 개시와 함께 출범하고 프로젝트 완성과 함께 해산한다. 수익은 투자자, 사원 또는 주주에게 배분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금 흐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문화산업전문회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투자 자금이 다른 프로젝트용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 사업비가 적정하게 지출되는지 검증하기 위해 별도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특정 프로젝트에 관한 자금 및 회계를 분리하는 것이다.
앞서 ‘새벽이 온다’, ‘위국헌신’ 등 온라인 창작 뮤지컬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유한양행이 문화산업전문회사에 따로 투자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제작비 규모가 작고 수익원이 뚜렷하지 않아 전담 법인의 필요성이 적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반면 이번 ‘암호명케이’는 일반 뮤지컬과 견줄 만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유한양행이 문화산업전문회사를 설립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이 투자한 뮤지컬 ‘암호명케이’가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지금까지 ‘유일한의 청년독립단’에서 보여준 것처럼 독립운동을 테마로 삼을 수 있지만 아예 다른 콘텐츠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유한양행 측은 뮤지컬 제작이 완전히 확정된 게 아니라고도 설명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암호명케이와 관련해 "회사 홍보활동의 일환이라고 보면 된다"며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사업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전했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