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사장은 지난주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직접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사장의 임기는 2024년 4월까지로 아직 1년 8개월이 남았다.
김 사장은 윤석열 정부가 ‘250만 호+α’ 주택공급 대책을 추진하려는 상황인 만큼 새 정부의 주택정책에 맞춰 새 토지주택공사 사장이 임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사장은 행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해 국세청장을 지냈다.
사정기관 출신이지만 토지주택공사에서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해 4월 토지주택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사태 수습을 맡았다.
김 사장은 사장 취임 뒤 토지주택공사 내에 부정부패 재발 방지 시스템 구축, LH혁신위원회 운영 등을 통해 토지주택공사의 혁신 작업에 공을 들였다.
김 사장의 사퇴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대형 공공기관장들 가운데 첫 사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KLI) 원장 등 국책 연구기관장이 사퇴한 바는 있다.
과거에는 새 정부 출범에 따라 정치권의 압박 등으로 주요 공공기관장이 임기에 관계 없이 자진 사퇴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에 사표를 종용했다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2021년 1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확정지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법원의 판단을 통해 공공기관장 등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유죄로 결론이 난 만큼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등에 정치적 압박을 통해 사퇴를 유도하는 일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다만 윤석열 정부는 공공기관 쇄신, 방만경영 개선 등을 내세우며 공공기관을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을 향해 “지금처럼 경제가 굉장히 어려운 비상 상황에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과하게 넓은 사무공간을 축소하고 너무나 호화로운 청사도 과감히 매각해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등 줄줄이 공공기관을 향한 경고성 발언이 이어졌다.
특히 원 장관은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 가운데 주요 쇄신 대상으로 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해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철도공사를 직접 꼽기도 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향한 압박을 높이는 가운데 토지주택공사에서는 7월 말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례가 추가로 적발됐다.
게다가 언론 보도를 통해 일부 간부 직원의 ‘출장지 골프’ 등 기강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김 사장을 향한 압박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한 총리는 지난 7월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토지주택공사와 관련해 “부동산 투기 이런 문제 때문에 처벌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기강해이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지 정말 유감스럽다”며 “이것도 합당한 문책을 통해 토지주택공사가 정말 공기업으로서 정신 차리고 제대로 원래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토지주택공사는 김 사장의 사퇴에 따라 이르면 다음 주 중으로 퇴임 절차를 거친 뒤 다음 사장 공모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음 사장 후보로는 김경환 전 서강대 교수, 심교언 건국대 교수, 이한준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 등이 거명된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