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곤혹스런 처지에 내몰렸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 찬성표를 던졌는데 법원이 이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했는데 법원은 주가를 떨어뜨릴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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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 |
서울고등법원 민사 35부(부장 윤종구)는 31일 삼성물산을 대상으로 일성신약과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주식매수 청구가격 조정 소송 2심에서 일성신약과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민연금을 거명했다.
재판부는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 주식을 지속적으로 내다판 국민연금의 행태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의 지속적 주식매도가 정당한 투자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합병을 앞두고 삼성물산의 실적부진이 주가하락의 원인으로 꼽혔지만 이는 삼성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사실상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오너일가의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 주가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고 의심을 제기한 셈이다.
재판부는 의결권 자문업체 등이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이유로 ‘합병반대’ 권고를 했는데도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합병에 찬성한 것도 석연찮은 대목으로 봤다.
지난해 합병 당시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국민연금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당초 1대 0.46으로 산출했다. 이는 실제 합병비율인 1대 0.35와 차이가 있다.
삼성물산 합병 추진 당시 국민연금의 행보에 석연찮은 구석이 너무 많았다.
합병 주총을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만난 점은 두고두고 많은 말을 남겼다.
이 부회장과 홍 전 본부장은 지난해 7월 7일 삼성전자 본관에서 만났는데 이때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에서 삼성물산 합병 의결권 행사지침을 정하기 불과 사흘 전이었다.
삼성물산 합병안은 필요한 찬성표를 간신히 넘기며 통과된 점을 감안하면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찬성이 합병에 결정적 요인이 된 셈이다.
국민연금이 투자위원회에서 삼성물산 합병안을 찬성한 것도 논란이 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11월 ‘삼성물산 합병건에 대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의 문제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배제한 채 내부 투자위원회의 심의의결만으로 삼성물산 합병건을 찬성하기로 한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크게 훼손한 것이자 일탈행위”라고 지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을 추진하다보니 합병비율이나 주식매수청구 가격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번 판결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전문적 시각을 갖고 투자한 것으로 다른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며 재판부 판단을 반박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