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화물연대와 합의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토부 산하 공기업에 혁신을 강도높게 주문하고 있다.
'정치적 고려'에 따른 행보로 읽히는 만큼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주요 공기업에 대한 압박 강도는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4일 공기업 안팎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토부 산하 공기업들은 자체 ‘혁신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원 장관이 전날인 23일 오후에 긴급회의를 열고 “국토부 산하 모든 공공기관은 일주일 내에 자체 혁신방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원 장관의 이번 지시는 최근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에 발을 맞춘 것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을 향해 호화청사 매각, 고연봉 자진반납 등을 언급하며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다. 이후에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공공기관 혁신을 미룰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연달아 내놨다.
24일에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까지 “공공부문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여권 전체가 대대적 공공기관 압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원 장관의 행보는 가장 눈길을 끈다.
윤 대통령이 공공기관 혁신을 언급한 지 이틀 만에 긴급회의를 열었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을 뿐 아니라 공공기관에 일주일이라는 빠듯한 기한을 제시하기도 했다.
원 장관은 지난 23일 자체 혁신안 제출을 요구하며 “혁신방안 마련에 집중하기 위해 공공기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인사, 조직개편 등은 혁신방안을 마련할 동안 중단하라”고도 주문했다.
다른 부처 장관들은 산하 공공기관을 향해 이처럼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원 장관이 이례적 행보를 보이는 것은 다른 부처 장관과 달리 유력 정치인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원 장관은 이번 대선에서 예비후보로 당내 경선에 출마했었고 윤 대통령의 대선캠프에서 정책본부장,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 등을 맡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원 장관은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국민의힘 당대표에 도전할 것으로도 예상됐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 예상과는 달리 원 장관은 국토교통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에 국토부에서 가시적인 정책 성과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대선에 다시 도전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동산 문제에 정권의 명운이 걸린 만큼 국토부에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주택공급 등의 현안을 해결한다면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원 장관은 지난 4월10일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뒤 ‘깜짝 인선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취재인 질문에 “국민의 고통과 눈높이를 국토, 부동산, 교통 분야에서의 전문가들과 잘 접목시켜서 국민과 함께 국민의 꿈을 실현시키고 고통을 더는 데 정무적 중심, 종합적 역할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원 장관이 혁신방안 마련에 특히 관심을 기울일 공기업으로는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철도공사 등이 유력해 보인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국가적 관문공항을 운영하는 공기업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민의힘 박완수 경남도지사 당선인 등 전임 사장들이 정치권에서 활동할 정도로 중량감이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현재 사장인
김경욱 사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김 사장은 국토부 관료 생활을 마친 뒤 민주당에 입당해 20대 총선에서 충북 충주시에 출마한 바 있다.
김 사장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된 이후에도 임기를 마치면 정치권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꾸준히 내비쳐 왔다.
한국철도공사 사장 역시 공기업 가운데 정치권과 가까운 인물들이 가는 자리로 꼽힌다.
현재 사장인
나희승 사장은 연구자 출신인 만큼 비교적 정치색은 옅다는 평가를 받지만 남북철도연결과 관련해 활발히 활동을 해 온 만큼 민주당과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게다가 한국철도공사가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2021년도 경영평가는 문재인 정부 때 마련된 기준으로 진행됐지만 2022년도 경영평가에는 새 정부의 평가 기준이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나 사장을 향해 강도 높은 압박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원 장관이 자신의 주요 성과로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일 주택공급와 관련된 공기업인 만큼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윤 대통령의 공공기관 혁신 발언이 나오기 이전인 지난 3일 “국토부의 주도로 강도 높은 LH 혁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원 장관이 산하공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군기잡기'는 다르게 해석될 소지도 있어 보인다. 민주당 성향 공공기관장들과의 '불편한 동거'를 끝내고 싶은 마음의 우회적 표현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나희승 한국철도공사 사장,
김현준 토지주택공사 사장은 각각 2024년 1월, 2024년 11월, 2024년 4월에 임기를 마친다. 1년 반에서 2년 이상의 임기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