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출입은행이 STX조선해양을 비롯한 조선회사들의 부실화로 직격탄을 맞아 재무건전성이 흔들리고 있다.
30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 및 은행지주회사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자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3월 기준으로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 9.89%를 기록했다. 2015년 말 10.04%에서 0.15%포인트 하락했으며 국내 은행 가운데 가장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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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훈 한국수출입은행장. |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금융회사의 자본적정성 지표인데 이 지표가 낮을수록 손실에 대한 여력을 쌓지 못했다는 뜻이다. 10% 아래로 떨어지면 금감원의 경영실태평가 1등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수출입은행은 2015년 9월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9.44%로 떨어졌다가 기획재정부의 출자를 받아 10%를 간신히 충족했다. 그러나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올해 본격화되면서 손실에 대비해 쌓은 충당금의 영향으로 자본적정성이 악화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STX조선해양에서 27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여파로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입은행은 STX조선해양에 1조2200억 원 규모의 여신을 빌려줬는데 충당금을 절반밖에 쌓지 못했다.
KDB산업은행은 30일 이사회에서 수출입은행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주식 5천억 원 규모를 현물출자하기로 했는데 수출입은행의 급격한 자본적정성 악화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수출입은행은 이번 출자를 통해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0.5%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올해 초 기자간담회에서 “정책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시중은행과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며 “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정책금융기관에서 일반적으로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출입은행을 주요 채권은행으로 둔 중소형 조선사가 법정관리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자본적정성 악화 문제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출입은행이 주채권은행을 맡은 성동조선해양은 지난해 11월부터 신규수주가 끊긴 상황으로 경영이 악화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에 2조3473억 원 규모의 여신을 빌려줬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성동조선해양은 40척 규모의 수주 잔량을 보유해 2018년까지 일할 물량이 있다”며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방향은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성회계법인은 최근 작성한 성동조선해양 감사보고서에서 “회사가 기업으로서 계속 존속할 수 있는 능력에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수출입은행은 SPP조선에 9872억 원 규모의 여신을 빌려주고 있는데 SPP조선도 삼라마이더스(SM)그룹과 벌이던 매각협상이 진척되지 않아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에 대한 자본확충 방안 마련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입장 차이로 별다른 진전을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는 29일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전체 규모와 방식 등 구체적인 방안은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최근 채권 발행 등 수출입은행의 자체적인 재원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19일 2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했다. 글로벌본드는 전 세계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되는 채권으로 대규모의 외화 유동성을 공급받을 수 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이번 글로벌본드 발행으로 얻은 외화자금을 건설·플랜트·자원 개발 등 고용효과를 낼 수 있는 국가기간산업의 해외진출 지원에 사용할 것”이라며 “구조조정과 국책은행 자본확충 지원이 논의되는 가운데 대규모 자금을 자체적으로 마련한 점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이 은행법 감독규정의 개정을 통해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를 발행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조건부자본증권은 특정 상황에서 투자금을 주식으로 강제 변환하거나 상각하는 자본증권으로 은행의 보완적 자기자본으로 인정된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할 경우 이 펀드에서 수출입은행의 조건부자본증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자본확충을 지원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