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성 기자 noxket@businesspost.co.kr2022-06-1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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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엄마는 발달장애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오랜 고민의 끝자락에서 든 생각. 우리 아이뿐 아니라 발당장애인들에게 정서적·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5년 동안 엄마는 뛰었다.
▲ 조명민 밀리그램디자인 대표.
밀리그램디자인은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회사다. 2017년 설립됐고 2018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비즈니스포스트는 17일 밀리그램디자인을 이끄는 조명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밀리그램디자인은 장애인훈련센터, 장애인 복지관, 언어발달센터 등 복지시설 공간의 설계 업무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조 대표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특히 색채와 조명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뇌파 변화를 연구한 결과 노란색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분석돼 노란색 색채와 이미지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밀리그램디자인은 낮은 손잡이, 점자블록 등 신체적 장애를 지닌 이들을 위한 디자인뿐 아니라 발달장애인 등에게 심리적·정서적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노란색을 잘 쓰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 대표는 발달장애인을 위해 화장실, 식당, 치료실, 보호실 등을 안내하는 픽토그램(사물·행위 등을 상징화한 그림문자)도 만들었다. 모든 복지관에서 통일된 그림을 보게 되면 그 공간이 어떠한 곳인지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불안감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담았다.
또 공간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모든 과정을 가능한 한 직접 관리·감독한다.
조 대표는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이 자재 공급이나 비용 등의 이유로 공사 과정에서 변경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공까지 직접 챙기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의 전공은 공간 디자인이 아니었다.
그는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결혼 뒤 유학을 떠나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조 대표는 당시 세 살이었던 아이가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이에 집에서 아이의 양육에 집중하다 보니 우울감이 커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들의 권유로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구회사로 출근을 시작했다고 한다.
조 대표는 “가구회사 일을 하다가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간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또 치료를 위해 방문한 복지관 시설에서 아이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보며 발달장애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마음이 간절해지자 조 대표는 건축학 공부에 뛰어들었다.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도 진학하면서 밀리그램디자인을 설립해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발달장애인을 더 잘 이해하겠다는 의지로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스누젤렌실(심리재활치료실)에 사용되는 제품을 개발해 선보였다.
▲ 밀리그램디자인이 개발한 물기둥 형태의 스누젤렌 제품. <밀리그램디자인>
스누젤렌은 네덜란드어로 냄새맡다는 뜻의 ‘스누펠렌(snuffelen)과 졸다는 의미인 ‘되젤렌(doezelen)’의 합성어다. 편안한 소리와 은은한 빛 등을 이용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긴장된 심리를 완화시키고 상태를 편안하게 해준다.
또 소리·빛·촉감·향기 등 다양한 자극을 통해 뇌를 자극하고 번연계(감정·욕구 등을 관장하는 신경계) 활성화를 돕는다.
조 대표는 "스누젤렌실을 설계하다가 대부분이 수입 제품이고 소음도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수입 제품보다 가격이 절반 이상 저렴하고 온도, 조명강도 등을 조절할 수 있는 물기둥 형태의 한국형 스누젤렌 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스누젤렌실 통합제어장치도 개발하고 있다.
조 대표는 “통합제어장치에 심박수 체크 기능 등을 더해 상태가 안정적인지 수치로 확인하고 제품들을 손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며 “스누젤렌 치료와 관련된 데이터를 장애 유형별로 축적하면 이를 여러 발달장애인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은주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