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택배업계 1위를 지켜온 CJ대한통운이 쿠팡의 물류사업 확대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됐다.
‘유통 공룡’ 쿠팡이 자체배송 물량을 늘리면서 기존 택배기업들의 쿠팡향 물량 감소가 시작됐을 뿐만 아니라 쿠팡이 3자배송(3PL)시장로 발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은 국내 이커머스시장 점유율 1위인 네이버를 우군으로 삼고 CJ그룹의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풀필먼트센터를 확대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쿠팡의 공세에 맞서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가격 경쟁에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31일 택배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쿠팡이 물류사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내 택배시장이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쿠팡은 자체배송을 통해 상품을 배송하고 있지만 그동안 배송 물량이 급격하게 늘면서 CJ대한통운과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국내 택배기업들에게 일정 수준의 물량을 맡겨왔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쿠팡이 국내 택배기업들에게 맡기는 택배 물량은 전체 주문량의 30% 수준으로 파악된다.
쿠팡이 최근 국내 택배기업들에 맡겨왔던 물량을 자체배송으로 돌리기로 결정하면서 기존에 택배기업들은 물량 감소에 따른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내 택배업계 2위인 한진은 이미 쿠팡 물량 감소에 따른 타격을 받고 있다. 한진에서는 5월부터 6월까지 쿠팡이 맡겨왔던 월 700만 개의 물량 가운데 월 360만 개가 빠지게 됐다. 한진의 전체 물량 가운데 7~8%가량이 빠지는 셈이다.
CJ대한통운은 쿠팡의 배송 물량을 일부 맡고 있지만 한진과 다르게 전체 물량에서 쿠팡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전체 물량에서 쿠팡이 차지하는 비중을 정확히 밝히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쿠팡을 제외해도 물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쿠팡의 물량이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팡이 이번에 자체배송을 확대하는 것은 기존 택배기업들에게 배송물량 감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쿠팡이 그동안 갖춘 물류인프라를 기반으로 물류사업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류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지난해 국토교통부로부터 택배사업을 할 수 있는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자 인가를 취득하면서 택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택배업계에서는 이를 기반으로 쿠팡이 택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 단가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CJ대한통운은 그동안 단가를 낮춰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전략을 펼쳐왔다가 거의 과반의 점유율을 확보한 최근에서야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는 결국 쿠팡이 경쟁에 뛰어들면 CJ대한통운이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단가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다.
쿠팡이 기존에 구축한 물류인프라를 기반으로 풀필먼트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는 점도 CJ대한통운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
풀필먼트는 물류기업이 판매업체로부터 위탁을 받아 배송부터 보관, 재고관리, 교환과 환불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하는 물류 일괄대행서비스를 말한다. 기업들은 풀필먼트시스템을 통하면 판매할 물건을 쌓아둘 장소를 마련하거나 재고를 직접 관리해야하는 부담을 해소할 수 있다.
쿠팡은 오픈마켓 사업자를 대상으로 풀필먼트서비스인 ‘제트배송’을 제공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네이버와 손을 잡고 네이버쇼핑에 입점한 오픈마켓 사업자들에게 풀필먼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는 국내 이커머스시장에서 쿠팡과 1, 2위를 다투는 국내 이머커스 사업자로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사업 확대에 든든한 '우군'이다.
CJ대한통운은 2020년 네이버와 지분교환을 통해 연합전선을 구축했는데 이후에도 꾸준히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CJ대한통운과 네이버는 5월2일부터 육아용품, 생필품 등 일부 상품군에 한해 고객이 오전 10시까지 주문하면 당일에 배송하는 서비스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11일부터는 주문 다음날 배송하는 ‘내일도착’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 종류와 브랜드를 확대하기도 했다.
CJ그룹 차원에서 물류·커머스 등 플랫폼 사업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점도 CJ대한통운에게는 긍정적이다.
CJ그룹은 향후 5년 동안 20조 원의 투자 계획을 내놨는데 이 가운데 플랫폼분야에 7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7조 원은 CJ대한통운의 물류 운영 경쟁력 확보와 CJ올리브영의 IT기술을 적용한 마케팅·서비스 고도화, 글로벌 매출 비중 확대에 쓰인다.
CJ대한통운은 풀필먼트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2022년 3월 기준으로 수도권에 8개의 상온 e-풀필먼트센터와 1개의 저온 e-풀필먼트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배송거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국내 소매시장의 주도권은 온라인쇼핑시장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며 “상품군별 특색에 맞춘 물류 경쟁력 강화가 핵심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