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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뉴시스>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5·18 민주화 운동 36주년을 앞두고 이 노래를 놓고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리둥절할 일이지만 여야와 청와대, 국가보훈처가 기념곡 지정을 놓고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인다.
청와대는 17일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제청불가 입장으로 결론을 내린데 대해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말씀하셨고 보훈처에서 결정해야 될 사안”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서 여야 3당 지도부와 가진 회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5.18민주화운동 기념곡으로 지정을 허용해 달라는 야당의 제안에 “국론분열이 생기기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은 제창 허용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보훈처는 16일 기념곡으로 지정하지 않고 제창이 아닌 기존의 합창방식을 고수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보훈처의 결정에 대해 야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도 맹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보훈처가 대통령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혜훈 새누리당 당선자는 17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보훈처장이 대통령의 말씀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고 비판했다. 보훈처가 모처럼 무르익은 ‘협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본 것이다.
야당도 보훈처의 결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승춘 보훈처장의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라고 발언했다. 우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박 처장이 보수의 영웅이 되고 싶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트위터에서 박 처장을 ‘대통령 위의 보훈처장인가?’라고 꼬집은 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대통령의 지시가 보훈처장에는 안먹힌다는 말인가? 아니면 청와대회담 때 박 대통령이 허언을 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여야 3당은 박승춘 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 채택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한술 더 떠 협치를 위해 개헌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과 연 '청와대 회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문제에 대해 세번이나 설명했다”면서 “이렇게 해서 국회에서 협치하라면 할 수 있겠나, 협치를 하기 위해 우리나라도 개헌을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공식 기념식에서 제창됐다. 참석자 전원이 함께 부르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2009년부터 국론분열을 이유로 합창단이 부르는 합창으로 불리는 것만 허용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노래 1곡에 불과한 것이지만 최근 정국에서 상징성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20대 여소야대 국회 개회를 앞두고 있는 만큼 여야는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 앞에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려 해왔다.
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2야도 18일 민주화운동 36주년 공식 기념식을 앞두고 있어 이번 총선에서 희비가 엇갈린 광주민심을 붙잡는 데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보훈처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회가 2013년 6월27일 본회의에서 이미 5.18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긍정적 검토까지 했는데도 보훈처가 ‘안하무인’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물론 보훈처의 결정에 청와대와 교감이 이뤄졌는지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박승춘 보훈처장의 독단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는 의견도 우세하다. 박 처장은 2011년 2월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임명됐으며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신임을 받고 ‘장수’하고 있다. 박 처장은 육군 중장 출신으로 뼛속까지 보수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세월호 사고 직후 “우리나라는 큰 사건만 나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고 유족을 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보훈처는 16일 보도자료를 내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1991년 황석영, 리춘구(북한)가 공동집필했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포함했다가 수정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 노래가 김일성 혹은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일부 보수단체들의 유언비어성 주장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