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2-04-21 15: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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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KDB산업은행의 역할을 줄이자는 '역할 재편론'이 고개를 들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과 관련해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나온다.
만약 산업은행 민영화나 분할론에 힘이 실린다면 분할 뒤 일부만 옮겨가는 형태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중심으로 본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회를 중심으로 국내 정책금융의 핵심기관인 산업은행의 역할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산업은행 역할 재편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은 19일 국회에서 열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인사청문회에서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과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창용 후보자에게 2008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당시 산업은행의 민영화 정책을 추진한 경험을 물으며 정책실패를 지적했는데 이 후보자는 “정책실패를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산업은행 민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후보자는 “산업은행 민영화는 정말 소신을 가지고 추진했던 정책”이라며 “산업은행 민영화 정책이 왜 원상태로 돌아갔는지 그 이유는 아직도 수긍하지 못하겠고 개인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전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중심으로 본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 토론회는 산업은행 역할 재편론에 기름을 부었다.
윤창현 의원은 국민의힘을 대표하는 경제전문가로 여겨진다. 토론회에도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해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 류성걸 정책위원회 부의장, 김희곤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 등 국민의힘 의원 10명이 직접 토론회장을 찾아 산업은행 역할 재편에 힘을 보탰다.
정책금융이 너무 비대해졌다는 점이 산업은행 역할 재편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기영 경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전날 토론회에서 “최근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책금융 비중을 어림잡아 계산해 봤는데 30%가 넘게 나와 깜짝 놀랐다”며 “중앙은행이 정책금융의 재원 역할을 하던 1990년대 초반에도 20%대였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과다한 정책금융이 민간영역과 부딪쳐 시장의 정상적 작동원리를 왜곡하고 결국 국가 전체 금융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사후 구조조정 중심의 역할에 한계가 왔다는 점도 산업은행 역할 재편의 주요 이유로 여겨진다.
산업은행은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육성, 1980년대에는 부품소재산업 육성과 기계 국산화, 1990년대에는 첨단산업과 기술개발 지원, 2000년대는 벤처생태계 구축 등 시대에 따라 핵심역할을 계속 달리하며 국가 산업발전을 이끌었다.
산업 구조조정 역할을 본격적으로 맡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고 난 뒤인 2000년대부터인데 그 이후로는 비효율적 사후 구조조정에 많은 자원을 쏟아붓는 탓에 미래 성장동력 육성이라는 시대 과제에 소홀한 것으로 평가됐다.
토론회에서는 산업은행 기능을 중소기업금융지원, 구조조정 및 혁신기업 투자, 상업금융 등으로 쪼개 일부 민영화하자는 구체적 제언도 나왔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중소기업금융지원과 상업금융 부문은 ‘중소기업 정책금융공사’에 이전하거나 민영화를 추진하고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금융과 혁신기업 투자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에 흩어져 있는 중소기업 지원 기능을 모아 ‘중소기업 정책금융공사’를 새롭게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을 중심으로 본 정책금융의 문제점과 혁신과제' 토론회에서 토론발제를 듣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산업은행 역할 재편 논의가 본격화한다면 윤 당선인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산업은행이 분할되고 민영화 등이 추진된다면 지금의 형태가 아닌 일부 기능을 떼어낸 채 부산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있다.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본점을 서울에 둔다고 명시하고 있는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이 필요한데 관련법을 다룰 국회 정무위원회는 아직 관련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다.
정무위 국민의힘 간사를 맡고 있는 김희곤 의원실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국회 정무위 차원에서 산업은행 이전 관련 논의가 시작된 단계는 아니다”며 “다만 부산 이전 의지가 확고한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새 정책 방향에 맞춰 빠르게 추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을 비롯해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다른 만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산업은행 이슈를 주요 과제로 선정하더라도 산업은행 부산행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현실적으로도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곧바로 지방선거를 치르고 내각 안정화 과정도 거쳐야 하는 만큼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관련한 논의는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이 현실화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역할 재편 문제와 묶어서 논의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의 역할 재편 주장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보수정권에서 역할이 자주 달라졌는데 이명박정부에서는 산업은행이 민간금융과 정책금융으로 분리된 뒤 정책금융을 담당하는 정책금융공사가 새로 출범했다.
이후 민간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추진됐으나 박근혜정부 들어 민영화 자체가 없던 일이 되면서 정책금융공사는 2015년 다시 산업은행에 흡수합병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회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은 개인적 의견인 만큼 그 의견이 실효성이 높더라도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논의와 시간이 필요하다”며 “새 정부가 아직 출범 전인 인수위 단계인 만큼 산업은행과 관련해 어떤 변화가 이뤄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