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태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보험사에 의료데이터를 제공하는 문제를 놓고 새롭게 여론 수렴에 들어간다.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의료데이터는 경제적 가치가 크지만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아 여론 수렴 과정에서 절충안 마련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9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공단은 의료데이터 제공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의료계, 보험업계와 간담회 등 의견 수렴을 위한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이날 “최대한 빠르게 간담회 등을 마련하려 한다”며 “다만 코로나19 확산 등 문제로 일정 조율이 쉽지 않아 현재 구체적 시기를 밝히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간담회 등 대화를 거쳐 제공될 정보의 범위, 방식, 대상 등이 논의될 것”이라며 “특별히 주제를 한정하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 한다”고 덧붙엿다.
강 이사장이 이처럼 의료데이터 민간 제공 문제를 놓고 여론 수렴에 나선 것은 일종의 명분 쌓기일 수도 있다. 보험업계 등에서는 건강보험공단이 대선 이후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번 의견수렴은 시민단체, 의료계, 보험업계의 의견을 단순히 듣는 요식행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강 이사장이 업계와 시민사회단체 사이의 의견대립을 넘어설 절충안 마련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2020년 8월에 이른바 데이터 3법의 시행 등으로 건강보험공단이 의료데이터를 민간 보험사에 제공할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자료제공심의위원회를 통해 정보 제공을 결정하면 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강 이사장이 의료데이터 제공 문제에 신중을 거듭하는 것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은 전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있는 만큼 건강보험공단의 의료데이터는 국내 다른 의료데이터와 비교해 정보의 가치나 관련 결정에 따른 사회적 파장의 크기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여론을 외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9월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사 5곳이 정보제공 신청을 하자 3차례의 자료제공심의위원회 회의, 2차례의 청문회를 거친 뒤에도 학계와 공동 연구 등 부가 조건을 요구하며 미승인 결정을 내린 이유도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보재공을 신청한 5곳의 보험사 가운데 한화생명이 가장 먼저 요구된 조건을 보완해 다시 지난해 12월 정보제공요청을 냈지만 이제껏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11일 자료제공심의위원회를 통해 결론이 나올 예정이었지만 같은 달 25일로 한 차례 연기됐다. 1월25일에는 당일 회의가 취소됐다.
통상적으로 다시 심의위 회의가 열리는 데 2주 정도 걸리는 만큼 1월25일 심의회 취소 이후 2월8일을 전후해 회의가 열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재까지 다음 회의 일정조차 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한화생명의 정보제공요청 결과를 놓고 승인으로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올해 1월 취임한 강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관료 출신인 만큼 빅테이터 등 신사업 추진에 힘을 싣고 있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의료데이터 개방에 긍정적 태도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는 건강보험공단의 의료데이터 제공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로 공공 데이터가 보험사의 영리 목적에 사용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반면 보험업계에서는 제공받으려는 정보가 익명 처리된 비식별 정보로 상품 개발을 위한 통계 목적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