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 하면 정책당국이 싫어해서 파이어(fire, 해고)될 수도 있는데."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27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조선산업이 저가수주를 하게 되는 지금의 구조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이동걸 회장은 자신이 해고될 수 있다는 뼈있는 농담까지 하면서 "조선사 수주의 원가율이 90% 이상이면 RG(선수금환급보증)을 발급하지 않는 방안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RG(선수금환급보증)란 선박을 주문한 선주가 조선업체에게 선수금을 줄 때 금융회사로부터 받는 보증서다. 선박계약 수주에서 선박인도 때까지는 몇 년이 걸리는데 조선사가 부도났을 때를 대비해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갚아주겠다는 보증인 셈이다.
조선사는 은행이 선수금환급보증을 해줘야 선박 건조를 시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 원가율이 90% 이상이면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은데도 일감 확보를 위해 수주하는 행태를 꼬집으며 “저가수주는 국부 유출이다”며 “산업재편 없이 지금의 조선3사 체제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에서 선수환급보증을 내주지 않는 강수를 두면 국내 조선사들의 일감이 줄어들 수 있고 그렇게 조선업 침체와 수출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 이 회장이 "정책당국이 싫어할 수도 있는데"라고 말한 이유다.
그럼에도 저가수주를 없애기 위한 산업재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회장은 2020년 9월 연임에 성공해 2023년에 임기가 종료된다.
이날 이 회장은 대부분의 시간을 대한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합병 실패와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유럽연합 경쟁당국의 결정은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에 의한 결정으로 보인다”며 “현대중공업이 소송 등을 진행해 끌려 다니지만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3사체제가 비효율적이었으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으로 이를 개선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며 여러 차례 아쉬움을 토로했다.
앞으로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컨설팅작업을 마친 3월이 돼야 플랜B부터 D까지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조선업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이 회장은 “현재 조선3사는 마치 붕어빵을 찍어내는 것처럼 사업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며 “3사가 특화전략으로 서로 다른 모양새를 갖추거나 생산량을 각각 3분의 1로 줄여야 공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일본계 금융3사가 각각 다른 글로벌 전략을 펼친다는 예를 소개하며 “일본계 금융사 사람을 만났을 때 물어보니 ‘조정은 하지 않지만 소통은 한다’고 대답했다”며 “우리도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시도했던 조선 빅2체제는 유럽연합(EU)의 반대로 무산됐다.
다른 조선사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는 방안도 독과점과 같은 이유로 불허를 받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이제 비조선사에서 인수 기업을 찾아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LNG선 기술이 있고 군사용 선박도 건조하기 때문에 해외매각은 불가능하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이 최대한 빨리 채권단 관리 체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보고 있다.
계속해서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되면 기업으로서 ‘야수성’이 없어지고 의탁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의 경영개선 없이는 추가 자금 지원도 없다고 못 박았다.
이 회장은 “현재까지 대우조선해양 정상화를 위해 4조2천억 원을 지원했고 그 가운데 산업은행이 2조6천억 원을 부담했다”며 “대우조선의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는 한, 추가자금 지원은 국가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인수 후보자로 비조선사로 자금 여력이 있는 곳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은 신규 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관리를 책임지고 할 곳이 있어야 한다”며 “누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조선사나 중소형 조선사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이 회장의 임기 내에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포스코, 한화, 효성 등 국내 대기업이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고는 있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악화된 재무구조를 감당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또 조선업이 과거와 비교해 사업 매력도가 떨어지는 점도 재매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은 향후 구주매각보다는 신주인수 방식으로 추진 회사를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며 “다른 곳에 인수되더라도 산업은행이 2대 주주로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