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과 비슷한 면세점,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면세사업을 하는 이유

▲ 롯데면세점 소공동점 내부.

백화점과 면세점은 비슷한 업종이다.

면세점은 백화점만큼 다양한 물건을 팔진 않는다. 하지만 패션과 잡화, 향수, 화장품 등 백화점 주력 상품들은 면세점에도 웬만하면 다 있다.

일반인 시각에서 면세점은 ‘세금 부담이 없어 백화점보다 제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국내 1, 2위 면세사업자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을 운영하는 회사는 모두 백화점기업이 아닌 호텔기업이다. 호텔롯데와 호텔신라 얘기다.

어쩌다가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면세점사업을 하게 됐을까?

◆ 호텔사업은 원래 면세점사업과 친해, 숙박업과 쇼핑이라는 교집합

9일 면세점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와 호텔신라는 회사 이름에 호텔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로 호텔사업에서 버는 돈보다 면세점사업으로 버는 돈이 더 많은 회사다.

2020년 기준으로 호텔롯데는 면세사업부에서 전체 매출의 81.9%를 담당했다. 호텔사업부의 매출 비중 12.9%의 6배가 넘는다.

호텔신라도 2020년에 면세유통부문에서 전체 매출의 88%를 냈다. 호텔과 레저부문의 매출 비중은 13.7%(연결조정 전)에 불과하다.

이들이 면세점사업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이유는 면세점사업이 호텔사업의 후광효과를 제일 크게 볼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호텔사업은 숙박업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관광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관광산업의 핵심이 쇼핑이라는 점에서 보면 호텔사업은 필연적으로 쇼핑사업과 마주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시내면세점사업에 발을 들이면서 사업을 확대해온 이유가 여기 있다.

호텔롯데는 1978년 12월 서울 소공동에 롯데호텔서울을 개관하면서 호텔사업을 본격화하고 있었다. 롯데호텔서울 바로 옆에는 부속건물로 롯데쇼핑센터가 들어섰다. 애초부터 호텔과 쇼핑을 한 데 묶는 사업모델을 구상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입된 시내면세점 제도는 호텔롯데에게 기회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취지로 1978년 12월 관세법을 개정해 보세판매장(세금을 보류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면세점을 말함)을 갖추기로 했다. 시내면세점 제도가 본격화한 것이다.

당시 신격호 회장은 이 사업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신 회장은 시내면세점 특허를 얻어 1980년 1월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8층에 호텔롯데면세점을 만들었다.

롯데호텔서울과 롯데백화점, 롯데면세점을 아우르는 공간을 만들어 시너지를 도모했다.

애초부터 호텔롯데면세점을 담당하는 부서는 호텔롯데 면세사업부였다. 잠시 롯데월드사업본부 산하 면세점부로 편입된 시절도 있었지만 1990년 다시 호텔롯데 직속 조직으로 바뀌었다.

이후 호텔롯데는 면세점부를 면세점영업본부로 승격했고 2007년경에는 롯데면세점사업을 담당하는 대표이사를 호텔롯데 안에 따로 선임하기도 했다. 현재도 롯데면세점은 호텔롯데의 면세점사업부 체제에서 운영되고 있다.

호텔신라도 호텔롯데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호텔신라가 서울 장충동에 있는 서울신라호텔의 문을 처음 연 시기는 1979년으로 롯데호텔서울 개관 시기와 같다.

하지만 호텔신라가 면세점사업에 나선 시기는 1986년이다. 호텔롯데보다 6년이나 늦었다.

다만 호텔롯데와 마찬가지로 호텔 옆에 면세점을 열었다는 점은 같다.

호텔신라의 면세점 1호점은 서울신라호텔 부지 안에 만든 신라면세점 서울점이다. 역시 호텔에 묵는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을 노렸다.

호텔신라 역시 호텔롯데처럼 면세점영업부라는 조직을 따로 만들어 신라면세점 서울점을 담당하게 했다. 면세점 담당 총지배인이 면세점사업을 이끌었다.

호텔신라는 조직개편을 통해 면세점영업부를 팀제로 바꿨다가 다시 사업부 체제로 변경했다. 현재는 면세유통(TR)부문으로 면세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롯데와 호텔신라 이외에도 면세점사업에 뛰어든 호텔기업은 또 있다. SK네트웍스다.

SK네트웍스는 국내 최초이자 서울 최초의 리조트호텔로 알려진 워커힐호텔을 1963년부터 운영했다. 1980년대 면세점사업이 본격적으로 확장하자 SK네트웍스 역시 사업을 검토해 1992년부터 워커힐면세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SK네트웍스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2015년 11월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해 워커힐면세점을 운영한지 24년 만에 문을 닫았다.

호텔롯데와 호텔신라, SK네트웍스의 워커힐호텔 등의 사례는 호텔기업이 면세점업과 매우 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면세점사업을 호텔기업이 운영하는 것을 두고 종종 오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8일 리포트를 통해 중국 유통 애널리스트들과 백화점 대표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한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 유통 애널리스트들은) 롯데와 신세계가 백화점을 보유하고 있어 면세점 사업도 당연히 잘 할 것 같은데 호텔신라의 경우에는 백화점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데도 어떻게 면세점 메이저 사업자가 됐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며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당연한 선입견이다”고 짚었다.

박 연구원은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잘못된 교집합이다”며 “한국 면세점은 기본적으로 호텔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에게 추가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2011년 3월 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도 면세기업과 여행기업, 카지노기업의 주가가 급락했는데 유통기업의 사업구조를 잘 몰랐던 기관투자자들이 시급하게 관련주들을 팔면서 롯데쇼핑을 매도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박 연구원은 롯데쇼핑이 롯데면세점을 운영하는 게 맞냐며 다급하게 걸려오는 전화에 일일이 “아닙니다. 롯데면세점은 호텔롯데가 운영하고 있고 롯데쇼핑과는 아무런 관계 없습니다”고 해명했다. 결국 롯데쇼핑 주가는 10% 넘게 하락하다가 원래 수준을 회복했다.

모두 면세점업의 오해에서 일어난 일이다.
백화점과 비슷한 면세점, 호텔롯데와 호텔신라가 면세사업을 하는 이유

▲ 신라면세점 서울점.

◆ 한국 면세점업, 관광산업 활성화와 함께 시작하고 성장해

한국 면세점의 시작과 성장은 모두 관광산업 활성화와 연관돼 있다.

한국 면세점업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1962년 설립된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가 1964년 11월에 주한외국인에게 면세품을 판매하기 위해 설립한 특정 외국물품 판매소 ‘한남체인’이 한국 최초의 면세점이다.

국제관광공사는 이후 1967년 김포공항에 민간업체와 함께 출국장면세점을 열었다. 당시 국제관광공사가 담배와 주류를 독점으로 판매했고 민간업체들은 시계와 향수, 화장품, 토산품을 팔았다. 국제관광공사는 몇 년 뒤 모든 품목을 독점으로 운영했다.

시내면세점은 1970년대에 속속 등장한다.

1973년 8월 서울 남대문 부근에 들어선 남문관광면세백화점에 이어 인사동에 웅전면세점이 등장했다. 당시에도 공항에 면세점을 여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합리적이었으나 김포공항의 협소한 면적 탓에 시내에도 면세점을 허가해준 것이다.

하지만 남문관광면세백화점과 웅전면세점의 규모는 소규모 잡화점 정도였다.

지금처럼 국내 면세업이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78년 12월에 마련됐다.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관광산업은 급격하게 발전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수는 1962년 1만5184명에 불과했지만 1972년 37만656명으로 10년 동안 24배 늘었다. 1978년에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대다수의 관광객은 일본인이었는데 정부로서는 이들에게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제23차 관세법 개정으로 시내면세점 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