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대개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는다. 그러나 몇몇 기업들은 자진해 상장폐지를 선택하고 증시에서 나오려고 한다.
이런 기업들은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경영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한다고 말한다.
꼭 그런 것일까?
◆ 늘어나는 자진상장폐지
경남에너지가 14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상장폐지 승인의 건을 의결한다.
경남에너지는 3월 초에 자사주 3만 주를 취득하며 자진상장폐지 요건인 지분 95% 이상 확보에 성공했다.
|
|
|
▲ 정연욱 경남에너지 부회장. |
경남에너지는 주총에서 상장폐지 안건에 대한 주주들의 승인을 받은 뒤 15일에 한국거래소에 자진상장폐지 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경남에너지는 그 뒤 2주 동안 정리매매기간이 지나면 1994년 상장 후 22년 만에 증시에서 사라지게 된다.
최근 증시에서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트라스BX는 3월에 공개매수를 통한 자진상장폐지를 시도했지만 지분을 87.68% 확보하는 데 그쳐 실패했다.
아트라스BX는 상장폐지를 위해 7.32%의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순현금 2505억 원을 보유하고 있어 조만간 공개매수를 다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도레이케미칼도 자진상장폐지에 나서고 있다.
도레이케미칼은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주식을 공개매수하며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지분 95%를 확보하지 못해 상장폐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2011년부터 최근 5년 동안 자진상장폐지를 선택한 기업은 코스닥 기준으로 18개에 이른다.
◆ “상장, 부담만 크고 얻는 실익 없어”
기업은 증시 상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다.
상장기업은 투자를 목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때 비상장기업보다 유리한 금리로 발행할 수 있고 유상증자를 할 때도 공모가 쉬워 큰 규모의 자금을 쉽게 유치할 수 있다.
또 상장 뒤에는 주주들의 주식 유동성이 높아져 증시에서만 주식을 거래해도 현금을 확보하기가 쉽다.
이런 이익에도 불구하고 자진상장폐지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장 기업들은 상장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은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행정적 절차에 지불되는 비용과 회사의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기마다 작성해야 하는 사업보고서, 각종 공시 등이 부담된다고 강조한다.
상장 기업들은 주주가 늘어나면서 주식관련 담당부서의 업무량 증가, 주가안정을 위한 재무홍보(IR)활동 등에도 신경써야 한다.
|
|
|
▲ 조현식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사장. |
현금성 자산이 많고 이익을 꾸준히 내는 기업이 오랜 기간 자사의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하면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하기도 한다.
상장을 유지해서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보다 상장폐지를 통해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는 등 경영관리를 손쉽게 하는 것이 사업을 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기업들이 자진상장폐지를 선택하는 이면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상장기업의 최대주주는 자진상장폐지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독점할 수 있다. 특히 수익구조가 명확한 기업의 경우 이익을 꾸준히 내는 데 비해 배당에 대한 요구와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 없어 성과의 과실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다.
비상장기업이 되면 회계감사 절차가 간편해 비용도 줄일 수 있다.
◆ 직원들이 상장폐지하자는 기업도 있어
현대페인트 노조는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기자본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챙기고 있다”며 “이에 따라 노동자와 일반투자자들만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상장을 악용하는 투기자본 탓에 경영정상화는 엉망이 됐다”며 “상장을 폐지하는 것만이 임직원과 노동자들이 함께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현대페인트는 1989년 증권시장에 상장된 뒤 1998년 한차례 부도를 겪었다. 그 뒤 대주주가 부산상호신용금고, 유아이에너지, JCT컨소시엄, 지에스케이원, 지앤에이치 등으로 바뀌었다.
노조는 대주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대주주들이 한결같이 자산매각과 주식 시세차익을 이용해 이익을 남기는 데만 주력하고 경영정상화에는 소홀했다고 주장했다.
현대페인트는 3월 재무구조 악화에 따라 유상증자를 시도했지만 청약률이 0%에 그치며 유상증자에 실패했다.
한국거래소는 3월 말 현대페인트의 주식거래를 중단하고 20일까지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지 못하면 현대페인트를 상장폐지하겠다고 밝혔다.[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