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1-11-23 16: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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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가 별세하면서 과거 전두환 정부의 경제, 금융정책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가안정과 공정거래법 도입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저금리정책으로 ‘부동산투기’를 구조화됐고 증권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실패했다는 시각도 있다.
▲ 전두환씨.
중소기업중앙회는 23일 전두환씨 사망에 “고인은 대통령 재임 시절 중소기업 진흥 10개년 계획 추진, 유망 중소기업 1만 개 육성, 중소기업 경영안정 및 구조조정 촉진법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양적 성장을 견인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른 경제단체들은 별도의 논평을 내지 않으면서 전두환씨를 향해 엇갈린 시각이 확인됐다.
최근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선거후보가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고 옹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는 ‘물가안정’이 꼽힌다.
전두환 정부가 출범한 1980년에는 1970년대 국내 경제발전을 이끈 중공업이 원유가격이 2배 이상 치솟은 ‘오일쇼크’로 위기를 겪으면서 국내경제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80년 29%, 1981년 21%까지 오르자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경제정책을 펼쳤다.
전두환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은 당시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의 주도로 이뤄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재익 경제기획원 국장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하며 “이제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김 경제수석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 아래 공권력을 활용해 공산품 가격 인상을 막았고 근로자 임금과 추곡 수매가도 동결했다. 여기에 기존 수출지상주의정책에서 수입개방으로 방향을 바꿔 물가를 안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2년 7.2%, 1983년 3.4%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공정거래법 제정도 전두환 정부 때 이뤄진 것이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부는 공정거래법 제정을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당시 공정거래법 제정에 참여한 이규억 아주대 경영학부 교수는 “권력의 정통성이 의문시되는 신군부에 의해 공정거래법이 통과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는 1986년 12월31일 대통령령으로 최저임금법도 제정했다. 임금 격차를 완화하고 노사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으로 이는 현재까지도 전두환 정부가 잘한 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법 초기에는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게 결정돼 실제 임금의 최저한도 기능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2000년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최저임금이 현실적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었다.
다만 전두환 정부의 정책에는 '그림자'도 많았다. 1982년 6월28일 ‘6·28조치’를 전격적으로 발표한 일이 대표적 사례다.
6·28조치의 뼈대는 은행의 대출금리를 14%에서 10%로 낮추고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를 12.6%에서 8% 인하하는 것이었다. 33~38%의 법인세율도 20%로 낮추기로 했다.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 만큼 기업들의 투자를 활성화해 침체됐던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도였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의 주도로 밑그림을 그렸고 경제부총리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추진됐다.
하지만 정부 계획과 달리 저금리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이 시설투자가 아닌 부동산투기를 하면서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경제부처와 충분히 논의를 거치지 않은 금리인하로 경제활성화가 아닌 경제불균형의 심화를 야기했다.
공금리와 실세금리 차이가 커지면서 은행들은 대출 일부를 예금으로 강제하는 이른바 ‘꺾기’도 기승을 부렸다.
갑작스러운 저금리조치는 국내 증권시장의 침체도 불러왔다. 기존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자 기업들은 증권시장에서 기업공개를 할 이유가 없어졌다. 1982년에는 기업공개가 한 건도 없었다.
시중은행 민영화도 전두환 정부 때 시작됐다.
전두환 정부는 1980년대 금융 자율화 여건 조성을 이유로 한일은행과 제일은행, 신탁은행, 조흥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을 민영화했다. 정부 소유의 은행을 사줄 곳은 재벌밖에 없었고 현대그룹, 삼성그룹, LG그룹, 대우그룹이 시중은행 주식을 대규모로 소유하게 됐다.
이는 주요 금융기관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해 1980년대 재벌들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기반이 됐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외국자본이 국내금융을 장악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