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총선 이후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새누리당이 4.13 총선 공약으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한국형 양적완화’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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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등 경제공약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은 31일 “한국판 양적완화는 단순히 돈을 뿌리는 정책이 아니다”며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데 공격적인 재정금융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은 새누리당의 총선 경제공약으로 한국은행에서 KDB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인수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한국은행에서 산업은행의 기업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 지원하고 주택담보대출의 장기분할 상환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이 선거 공약으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조정을 내놓은 일은 사실상 처음이다.
강 위원장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방식으로는 시장에 제대로 돈을 돌리지 못한다”며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을 내놓았다”고 밝혔다.
이 공약이 시행되려면 한국은행법을 개정하거나 정부의 채무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은행법 제76조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정부에서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 채권만 직접 인수할 수 있는데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담보대출증권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이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주열 총재도 30일 기자간담회에서 “특정 정당의 공약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한국은행도 경제 활력의 회복과 구조조정 뒷받침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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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그러나 한국은행은 향후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으로 촉발된 논란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채권 매입과 같은 양적완화와 금리인하를 같이 시행하고 있다”며 “가계부채에 따른 저성장 위험성까지 감안하면 한국은행에서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의 시행 요구를 외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채권을 실제로 매입하지 않더라도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려 여당의 경기부양 정책과 방향성을 맞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판 양적완화’ 정책은 집권 여당의 공약으로서 한국은행에서 무시하기 어렵다”며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할 가능성이 크며 신임 금융통화위원들도 ‘비둘기파’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점과 맞물릴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