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
금융감독원이 자살고객에게 재해사망보험금 대신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한 ING생명에 위법 판결을 내렸다. 약관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실질적인 제재가 따르지 않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ING생명이 자살 고객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을 위법 행위라고 결론 지었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26일 열리는 제재심의위원회에서 ING생명에 ‘기관주의’, 임직원 4명에에게 ‘주의’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49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 금융감독원의 보험사 봐주기 논란
금융감독원의 이번 결정은 같은 문제로 물의를 빚고 있는 다른 20여개 생명보험사들에 대한 징계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안이 중대하고 9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쳤던 점을 감안하면 금융감독원이 예상 밖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렸다는 지적이 많다. 기관경고를 받으면 3년간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수 없지만 기관주의의 경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번 금융감독원의 판결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점은 금융감독원이 ING생명에 위법 결정을 내리고도 나머지 보험금을 고객에게 추가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은 사실이다.
금감원은 ING생명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추가 보험금 지급 여부와 액수 등을 결정하도록 했다. 만약 ING생명이 보험금을 자발적으로 지급하지 않을 경우 고객들은 소송 등을 통해 보험금을 지급받아야 한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의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민사적 책임은 물을 수 있지만 행정적 제재는 강하게 할 수 없다”며 “이후 ING생명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추가 징계를 내리겠다”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보험사 봐주기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보험사들의 로비로 금융감독당국이 지난 9개월 간 이 문제를 쉬쉬해왔다”고 주장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금감원이 지급 명령을 하지 않은 만큼 보험사가 사안을 축소해서 처리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며 “금감원이 소비자가 아닌 업계 편을 들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융감독원의 이번 결정은 퇴임 후 보험업계 사외이사로 옮겨가는 이른바 ‘관피아’ 탓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3월 보험사들의 주주총회에서 금융감독원을 포함한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롯데손해보험은 금감원 부원장보 출신을 사회이사로 선임했고, 동부화재도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위원 출신을 사회이사로 재선임했다. 현재 생명보험협회 부회장 역시 금감원 출신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사회는 감독당국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며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감독당국의 감사를 받는데 금감원 출신의 사외이사가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실적부진으로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면서도 사외이사들에게 평균 수천만 원의 보수를 지급한다.
한편 금융감독원 1급 간부가 퇴직한 지 사흘 만에 신설 중소 보험사 부사장이 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금감원 재직 시절 본인이 직접 관리했던 회사를 인수합병한 신설 법인의 부사장이 됐다. 규정에 따르면 퇴직 후 2년이 지나야 관련업계에 취업할 수 있다.
◆ ING생명, 자살보험금 약관 위반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9월 ING생명 검사 과정에서 ‘보험 가입 2년 후 자살한 고객에게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 내용을 지키지 않고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했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일반사망보험금은 보험금 액수가 재해사망보험금의 절반 이하다. 이에 따른 미지급 보험금은 이자를 포함해 총 560억 원이었다.
이후 전체 24개 생명보험사 중 푸르덴셜생명과 라이나생명을 제외한 22개 생보사가 최대 5천억 원의보험금을 미지급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약관에 따라 미래에 지급해야 할 보험금까지 합치면 이 금액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ING생명을 포함한 생보업계는 “약관을 잘못 기재한 단순 실수였고 자살건수 증가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재해사망보험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