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최근 담뱃세 인상을 추진중이다. 국민 건강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세수확보 차원에서 10년 간 묶여 있던 담뱃세를 손보겠다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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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
보건복지부는 1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담배가격 인상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담뱃세를 인상해 청소년의 담배 구매력을 떨어뜨려야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청소년 흡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 남성 평균 흡연율과 비슷하고 미국 청소년의 약 2배에 이르는 현실을 강조했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는 "흡연에 따른 소득계층간 건강 불평등 정도가 계속 심해지다 2003~2006년 사이 안정된 것은 담배값 인상에 따른 효과"라는 내용의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조 교수는 담배값 인상이 국민 전체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은 물론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건강 불평등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이성규 박사는 2009년 미국의 담뱃세 인상 사례를 소개하며 담배회사의 담뱃값 인상저지를 위한 로비활동과 담뱃값 인상 반대논리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이 박사는 담배가격이 인상되면 담배 밀수가 늘고 저소득층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담배회사의 주장이 실제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담뱃세를 인상하는 데 성공적이었던 요인으로 우호적 여론형성을 통해 추진해나간 점을 들었다.
임종규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11일 금연의 날 행사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세계보건기구의 담뱃세 인상 권고를 받아들여 담배 규제 기본협약 당사국 일원으로서 담뱃세 인상을 강하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담뱃세를 50% 이상 올려야 금연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담뱃세 기준으로 50%를 인상하면 담뱃값이 800 원 더 오르게 된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5월 31일 세계금연의 날을 맞아 ‘담뱃세가 올라가면 죽음과 질병이 줄어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세계 각국에 전달했다. 세계보건기구는 한국을 비롯한 담배규제기본협약 당사국들에 "담뱃세 수준을 현재보다 50% 올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부는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50% 보다 담뱃세를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미한 담뱃세 인상은 금연을 유도하는 데 효과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담뱃값은 2004년 이후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2500원짜리 국산 담배 한 갑 기준 세금은 1549 원으로 62%를 차지한다. 이는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담뱃세 비율 70%보다 낮다. 한국의 담뱃값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싸다. 담뱃값이 가장 비싼 노르웨이와 비교하면 6분의 1 정도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안에 기획재정부, 안전행정부와 협의를 거쳐 법 개정안을 만들어 내년 초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가 10년간 묶여 있던 담뱃값을 크게 올리는 실질적 이유는 따로 있다. 국민건강 증진은 정부의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한 명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8조 원이 넘는 세수부족으로 예산안을 삭감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8일 각 부처 예산담당 간부들과 ‘재정개혁위원회’를 열고 내년 예산안 편성 때 재정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임종규 국장 역시 "세수를 걱정해야 하는 기획재정부도 담뱃값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해 담뱃값 인상을 통한 정부의 세수확충 의도를 시인했다.
담뱃세로 거둔 세수의 사용처와 인상폭의 조율 과정을 보면 정부의 담뱃세 인상 추진이 국민건강을 앞세운 꼼수에 불과하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현재 2500 원 짜리 담배 한 갑을 팔면 지방세로 962 원,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354 원이 사용된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 부대표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담뱃세 인상으로 국민건강을 지키려 한다면 국민건강증진기금을 늘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비율대로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지방세 등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일이 더 시급한 것이다.
새누리당도 사전협의 없이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계획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우리는 사전논의를 거치지 않고 발표되는 정부정책엔 일절 협조하지 않겠다”면서 “어차피 개정안이 국회에 넘어와도 처리되지 못할 걸 알고 발표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