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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뉴시스>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에 대한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러나 증자에 참여한 대한항공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상화 달성의 열쇠인 에쓰오일 지분 매각 협상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한진해운에 대한 4천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고 11일 밝혔다. 증자에 참여하는 곳은 한진해운의 최대주주인 대한항공이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해 말 한진그룹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번 증자로 발행될 주식 수는 총 7407만4074주이고 주당 발행가격은 5400원이다. 대한항공이 오는 17일 신주를 취득하게 되면 한진해운에 대한 지분율은 4.34%에서 33.23%까지 높아진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에 대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물류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유동성 위기에 시달렸던 한진해운은 이번 증자로 한 숨 돌릴 수 있게 됐다. 한진해운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으로부터 4천억 원이 들어오면 지금보다 자금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며 “이달 중으로 3천억 원 규모의 벌크선 사업부문 매각도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지원으로 한진해운이 급한 불은 끄게 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대한항공이 올해 1분기 가까스로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한진해운을 지원하면서 또 다시 적자로 반전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동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이번 유상증자로 한진해운이 대한항공에 연결회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해운업황 부진 등으로 한진해운의 흑자전환이 미뤄져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 연구원은 “대한항공이 추가적 지원에 나서거나 한진해운을 연결회계로 처리할 경우 올해 대한항공의 흑자달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한항공의 증자 참여가 이미 예정된 일이고 조 회장이 한진해운을 끌어안기로 결정한 이상 지원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문제는 한진해운 지원에 동원된 돈의 성격이다. 당초 조 회장은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한진에너지가 보유한 에쓰오일 지분을 매각해 증자에 필요한 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분매각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대한항공이 영업활동으로 모은 자금을 써야 했다.
조병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원 금액이 지난해 발표했던 수준인 만큼 참여 자체가 부정적이진 않다”면서도 “다만 에쓰오일 지분 등 예정된 자산 매각이 더디게 이뤄져 대한항공이 보유한 1조 원 대의 현금을 활용한 점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은 “한진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안이 비핵심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와 부채감소에 중점을 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차입보다 자산매각을 통해 재무부담을 줄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회장이 지난해 내놓은 3조5천억 원 규모의 대한항공 자구계획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에쓰오일 지분매각이다. 대한항공은 에쓰오일 지분 3198만 주 중 3천만 주를 아람코에 매각해 총 2조2천억 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로 에쓰오일 지분 3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아람코가 올해 초 대한항공 지분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 올해 1분기 안에 매각이 완료될 듯 보였다.
그러나 에쓰오일 주가가 계속 떨어지자 매각협상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굳이 비싼 가격에 지분을 살 필요가 없는 아람코가 소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탓이다. 에스오일 주가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7만4천원 대였으나 11일 현재 5만6천 원대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지분매각 대금도 1조6800억 원으로 줄었다.
업계에서 매각협상이 올 2분기를 넘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조 회장이 이달 초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국제민간항공운송협회(IATA)에서 칼리드 알 팔리 아람코 총재를 만나 담판을 벌였다고 알려졌지만 아직 공식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 아람코는 한진그룹이 요구한 가격보다 더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과연 조 회장이 손해를 무릅쓰고서라도 매각에 속도를 낼지가 6개월을 끌어온 협상을 매듭짓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