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풀려나더라도 가석방은 경영활동 참여가 제한되는 ‘반쪽짜리’ 자유다. 이 부회장의 경영참여와 관련해 삼성의 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9일 열리는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에서 이 부회장도 광복절 가석방 여부를 심사받는다.
이 부회장 가석방이 이뤄질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앞서 7월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놓고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70%에 이르렀을 만큼 여론이 호의적이다.
이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과 관련해 대립각을 세우는 의견이 많지 않다.
주요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7월 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를 방문해 “이 부회장이 재벌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도, 특별한 불이익도 주지 않는 것이 민주적 원칙에 합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법무부 예규상 가석방 조건을 충족한 만큼 그를 필요 이상으로 수감해 둘 이유가 없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다고 해도 삼성그룹차원의 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경제사범은 5년 동안 취업이 제한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의 별도 허가가 있다면 이 부회장도 가석방 뒤 경영활동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 허가가 나올 공산이 현재로서는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5단체를 중심으로 사면을 건의해 왔다.
죄를 유지한 채 풀어주는 가석방과 달리 사면은 죄를 씻어주는 방식이다. 사면은 취업제한 등 경영활동을 막는 요인이 없는 만큼 삼성그룹의 오너 경영체제라는 관점에서는 최선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이 부회장 사면에 걸려 있는 정치적 부담감을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부회장이 사면된다면 현재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요구하는 보수세력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만약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뒨 법무부장관의 취업 허가까지 떨어진다면 정부여당은 이 부회장만을 풀어주기 위한 ‘편법’을 사용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정부여당의 주요 지지층인 시민단체들이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3일 참여연대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1056개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문재인 정부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며 촛불의 명령에 명백히 역행하는 행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미등기임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시민단체들이 이 부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가석방조차 반대하는 상황에서 취업허가까지 내려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취업제한이 풀리지 않는다면 이 부회장의 몸만 자유로워지는 것일 뿐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등 경영현안이 자유로워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시선이 많다.
그동안 삼성의 해외투자나 인수합병 등 굵직한 경영현안은 전문경영인이 계획을 면밀하게 수립한 뒤 이 부회장이 오너로서 대외적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삼성전자가 2016년 미국 전장부품회사 하만을 인수했을 때 이 부회장은 미국 하만 본사를 찾아 하만 경영진들과 직접 만나 인수 협상을 담판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이 2014년 ‘화학·방산 빅딜’을 추진할 당시에도 이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 전략부문장 사장(당시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 두 오너경영인의 만남이 대규모 인수합병거래를 속전속결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삼성그룹은 이 거래를 통해 반도체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170억 달러(20조 원가량)의 대규모 투자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130조 원가량에 이르는 현금 동원능력을 앞세워 의미 있는 인수합병까지 고려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준비하고 있는 투자계획들은 모두 대규모 투자일 뿐만 아니라 오너경영인이 보유한 글로벌 인맥의 활용까지 요구되는 계획들이다”며 “취업허가가 없는 가석방은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에게 ‘반쪽짜리’ 자유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문재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6월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에 가석방되지 않더라도 올해 연말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말에 ‘국민통합’을 이유로 두 전직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사면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그러나 반도체는 ‘시간의 산업’이다. 뒤늦은 투자 결정은 그만큼 고객사 확보가 어려워져 실패한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투자계획을 진행하고 있으나 반도체업계뿐만 아니라 재계에서 대만 TSMC나 미국 인텔 등 경쟁사보다 계획을 추진하는 속도가 늦다는 데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청와대의 4대그룹 초청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에 “반도체는 대형투자 결단이 필요한데 총수가 있어야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현재로서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법무부 장관의 취업허가가 내려지는 것이 삼성으로서는 최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은 이 부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어떠한 의견도 내놓지 않는 등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면이나 가석방 등은 이미 반도체업계나 재계를 넘어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결정될 문제가 됐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으로서도 그룹 차원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보여서는 안 될 상황에 놓인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