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유지하는 ‘초격차(결코 따라올 수 없는 격차)’가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 등 추격자들의 첨단공정 신제품 출시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나자 삼성전자가 추격자들보다 기술 진보가 늦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 이정배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
하지만
이정배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추격자들보다 앞선 기술 노하우를 내세워 시장 입지를 더욱 다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극자외선(EUV) 공정을 적용한 10나노미터급 4세대 D램와 176단 적층 낸드플래시의 양산을 올해 안에 시작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두 제품을 양산하는 시점이 추격업체들보다 늦다는 점을 들어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기술 패권을 잃게 되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앞서 7월 SK하이닉스는 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한 10나노미터급 4세대 D램의 양산을 시작했다. 마이크론은 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하지는 않았으나 10나노미터급 4세대 D램을 지난 1월부터 이미 양산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앞서 7월29일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메모리반도체 기술 진보로 삼성전자의 시장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 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1년 1분기 글로벌 D램시장에서 점유율 41.2%, 낸드플래시시장에서 33.4%로 모두 1위를 지켰다.
SK하이닉스는 D램 점유율 28.8%로 2위, 낸드플래시 점유율 12.2%의 4위에 올랐다. 마이크론은 D램 점유율 24.3%의 3위, 낸드플래시 11.9%의 5위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로만 보면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추격자들을 멀리 따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면서도 “추격자들의 기술적 진보가 빠른 만큼 삼성전자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양산을 준비하는 10나노급 4세대 D램과 176단 낸드플래시의 실물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만큼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초격차 유지가 불안하다는 말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선도 만만찮다.
이정배 사장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기술 경쟁력 강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1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하반기 안에 양산을 시작할 10나노급 4세대 D램을 놓고 ‘14나노미터급 D램’이라고 회로 선폭을 정확하게 밝혔다.
그동안 D램 제조사들은 D램 회로 선폭의 미세화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확한 수치를 밝히는 대신 ‘세대’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왔다.
삼성전자가 이런 반도체업계 관행을 깬 것을 놓고 기술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경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시선이 많다.
이 사장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삼성전자가 14나노미터급 D램 양산에 도입하는 극자외선 공정은 SK하이닉스보다 앞선 수준으로 파악된다.
▲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해 양산한 10나노미터급 1세대 D램 모듈. <삼성전자> |
반도체는 여러 층에 새겨진 회로가 종합적으로 작동하는데 각 층을 ‘레이어(Layer)’라고 한다.
SK하이닉스는 10나노급 4세대 D램의 1개 레이어에 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14나노미터급 D램의 5개 레이어에 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한다.
극자외선 공정은 기존 심자외선(DUV) 공정과 비교해 미세한 회로를 정밀하게 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공정의 수와 공정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더 많은 레이어에 극자외선 공정을 적용하는 만큼 원가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마이크론은 극자외선 공정을 아직 도입조차 하지 않은 만큼 SK하이닉스보다도 원가 경쟁력이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가 10나노급 4세대 D램의 양산에 가장 먼저 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삼성전자는 2020년 10나노급 1세대 D램 양산에서 세계 최초로 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했다. 메모리반도체에 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당시
이정배 사장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개발실장으로 D램 양산에 극자외선 공정을 도입해 양산에 이르는 과정을 이끌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극자외선 장비와 관련한 접근성과 활용 노하우 측면에서 경쟁사들을 앞서고 있다”며 “내년 이후 D램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추격자들의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사장은 낸드플래시에서는 이미 단수 쌓기 경쟁을 넘어선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 삼성전자가 양산을 준비하는 176단 낸드플래시의 이미지. <삼성전자> |
낸드플래시는 적층 단수가 높아질수록 성능이 개선되지만 반도체 역시 두꺼워진다. 반대로 1개 층의 두께를 줄일 수 있다면 같은 반도체 두께 안에 더 많은 층을 쌓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3차원 스케일링(3D Scailing)’이라는 기술을 통해 낸드플래시 두께를 경쟁사들의 같은 단수 제품보다 최대 35% 줄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반도체 적층 단수 이전에 상품성에서 앞서가는 셈이다.
다만 이 사장은 더 많은 층을 쌓아올리는 기술도 충분히 준비해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6월 송재혁 삼성전자 플래시개발실장은 기고문을 통해 “삼성전자는 이미 200단이 넘는 8세대 적층 낸드플래시의 동작 칩을 확보했다”며 “시장 상황과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적기에 제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신제품을 추격자들보다 늦게 양산하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 ‘초격차’의 칼을 갈아둔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