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에서 ‘10나노의 벽’을 뛰어넘는 일은 10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재 삼성전자 등 선두 반도체기업은 3나노급 반도체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2나노급 반도체도 개발됐다.
네덜란드 반도체장비기업 ASML이 이런 발전을 뒷받침한다. ASML은 첨단 반도체 개발 및 생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공급하는 데 대체 불가능한 기업으로 자리잡은 만큼 반도체업계의 기술 경쟁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 IBM의 2나노급 반도체 웨이퍼. ASML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해 개발됐다. < IBM > |
7일 IBM에 따르면 이번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2나노급 반도체에는 극자외선 기술이 적용됐다.
극자외선 기술은 웨이퍼에 빛으로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노광공정에서 활용된다.
기존 광원보다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을 통해 더 미세한 회로를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반도체는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전력 효율 등 성능이 개선된다.
IBM은 “IBM 미국 알바니연구소에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갖추고 있다”며 “극자외선 기술로 반도체 구조를 정밀하게 제어해 동일한 칩에 저전력 및 고성능 설계를 더 간편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ASML 제품으로 파악된다. 나스닥 상장기업인 ASML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생산해 세계 반도체기업들에 공급하고 있다.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5나노급 이하 첨단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비로 여겨진다. 반도체 회로폭이 일정 이상으로 미세해지면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데 극자외선 노광장비 적용으로 이 공정을 단축시켜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이 ASML의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해 5~7나노급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내년에는 극자외선 기반 3나노급 반도체를 양산할 것으로 예정됐다.
인텔도 2023년을 목표로 극자외선 기반 7나노급 반도체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하반기부터 메모리반도체 D램 일부 제품에 극자외선기술을 적용해 양산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2나노급 반도체도 이르면 2024년 양산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IBM뿐 아니라 애플 등 여러 IT기업이 2나노급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또 TSMC는 이미 2나노급 반도체 생산공장 설립계획을 밝혔다.
ASML은 이런 반도체기업들의 기술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고도화하고 있다.
ASML이 2분기 안에 공개하는 새 극자외선 노광장비 ‘NXE:3600D’는 기존 장비보다 웨이퍼 기준 생산량이 15~20%가량 더 확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반도체를 찍어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2나노급 반도체가 양산되는 시점에는 이보다 더 발전된 차세대 노광장비 ‘하이(High)-NA’가 반도체기업들에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비는 극자외선의 빛을 선명하게 해 더 정교한 반도체 회로를 구현할 수 있게 해준다.
ASML은 최근 내놓은 연례보고서에서 “하이(High)-NA 등 차세대 장비를 통해 고객들의 2나노급 이하 공정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ASML 직원들이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조립하고 있다. < ASML > |
이처럼 장비 성능이 개선될수록 부가가치도 높아진다. 현재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대당 2천억 원 수준인데 하이-NA 등 차세대 장비 가격은 대당 3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ASML의 수혜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ASML은 현재 글로벌 노광장비시장에서 점유율 85%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산업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기반으로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극자외선 노광장비 수요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ASML은 2019년 극자외선 노광장비 26대를 판매했는데 2020년에는 31대를 팔았다.
이에 따라 ASML 실적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ASML 매출은 2019년 118억2천만 유로에서 2020년 139억7900만 유로로 늘었다. 영업이익은 13억5100만 유로에서 35억5400만 유로로 급증했다.
ASML은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올해 40여 대, 내년에는 50여 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형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극자외선 노광장비는 TSMC,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올해부터 D램에도 적용된다”며 “ASML은 장비업종에서 가장 완벽한 독점구도를 구축해 극자외선 노광장비 수요 확대로 확정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