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국방부 장관에 1일 내정된 한민구 전 합참의장은 육군참모총장과 수도방위사령관을 역임할 만큼 정책과 전략기획에 정통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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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구 국방부 장관 후보자 |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이명박 정부 때 합참의장이 될 때 별다른 흠결이 없었다"고 밝힐 정도로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일 의병장의 손자인 점도 야당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때 합참의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김 장관이 안보실장으로 이동하더라도 손발을 잘 맞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 후보자는 "국방장관은 누가 맡더라도 방침은 확고하다"며 "국방장관은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해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토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임무다"라고 강조했다. 한 후보자는 현 국방부의 방침인 '북한 도발시 원점타격론'과 관련해 "우리 군의 자체 대응지침에 의해 즉각적 원점타격 개념이 나온 것이고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 밝혔다.
한 후보자는 충북 청원 출신으로, 청주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1975년 육군사관학교 31기로, 53사단장과 국방부 국제협력기획관·정책기획관, 수도방위사령관, 육군 참모차장,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했다.
한 후보자는 야전과 정책분야에 대한 안목과 식견을 고루 갖춘 군내 대표적 '문무겸비형'으로 평가받는다.
2006년 국방부 정책기획관 재직 당시 열렸던 남북 장성급회담의 남측 수석대표를 맡아 북한군과 직접 대좌하는 등 대북협상 경험도 있다.
한 후보자는 온화하고 친화력 있는 성품으로 뛰어난 갈등관리 능력이 있는 데다 군 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 후보자는 구한말 항일 의병장이었던 청암 한봉수(1883~1972) 선생의 손자이기도 하다. 한 선생은 1907년 일제가 군대를 강제 해산하자 24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아 무장 항일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910년 경술국치 뒤 사면됐다. 1919년 5월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 후보자는 아내 곽정임씨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