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4대강 사업’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었다. 올해 신년사에서 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 문제점을 직접 언급했다. 뒤이어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시절 진행된 대형 공공공사들에 대해 대대적인 추가 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내민 칼끝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조사도 이 전 대통령이 아닌 관계자를 구속하거나 건설업체를 때리는 등 변죽을 울리는 선에서 그칠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그렇다면 왜 박 대통령은 현 정부에 엄청난 부채를 떠넘긴 4대강 사업의 최종 책임자인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칼을 겨누지 않는 것일까?
◆4대강 사업 조사 소식에도 MB는 ‘여유만만’
MB정부 시절 발주된 대형 공공공사에 대한 공정위의 추가 조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비상이 걸린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닌 건설업계다. 건설업계는 과징금 폭탄, 부정당업자 지정으로 공공공사 수주 불가 등을 우려하며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4대강 사업 등 해당 사업의 최종 책임자인 이 전 대통령은 여유만만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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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자전거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
특히 지난 10월에는 건설업계와 이 전 대통령의 반응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조달청과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4대강 사업 담합비리 판정을 받은 건설업체들에 대해 입찰 제한 조치를 내렸다. 건설사들은 ‘죽으라는 것이냐’며 아우성을 쳤다. 같은달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강 자전거길에서 즐겁게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렸다. 북한강 자전거길은 4대강 사업 현장 중 하나다. 그는 “탁트인 한강을 끼고 달리니 정말 시원하고 좋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나와보세요~”라는 글도 함께 남겼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조사가 한창인 상황에 이 전 대통령이 이처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왜 일까? 그 바탕에는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4대강 조사의 칼끝이 자신을 향하지 않으리라는 이 전 대통령의 믿음이 깔려있다.
◆박 정부, MB의 아킬레스 건···변죽 때리기 일관
4대강 사업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4대강 사업장의 원청 대기업이 건설노동자와 하청업체에 지급해야 할 6694억원의 선금을 불법 유용했다며 공정위에 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두 달 뒤 공정위는 4대강 정비사업 1차 턴키공사 입찰 과정을 담합으로 규정하고 19개 건설사에 시정명령 및 1115억원 가량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그 이후 1년간 공정위는 어떤 추가 조사나 보강 조사 등을 실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이 공정위의 조사 및 발표 과정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공정위는 입찰 담합 내부고발자를 색출했다는 의혹과 함께 건설사들을 배려해 과징금을 경감해 줬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던 지난해 7월 감사원은 국정원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검사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결과 공정위는 지난 2009년 4대강 1차 턴키공사 담합건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고 2011년 2월 심사보고서 초안을 작성했음에도 2012년 3월까지 13개월 동안 정당한 이유없이 처리를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감사원은 담합처리 지연에 대해 주위를 요구하고 담합이 의심되는 16건의 턴키공사에 대해서도 위반행위를 조사하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감사원의 통보를 받은 지 6개월 만에 공정위는 추가 조사에 착수했다.
박근혜 정부 1년을 포함해 4대강 사업 관련 공정위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 2년 여동안 진행된 것은 관련 건설업체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와 부정당업자 지정이 전부다. 이마저도 업체들이 법원에 소송을 내 가처분 상태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은 사람도 건설업체 사장들과 장석효 전 도로공사사장, 이상득 전 의원이 주요하다. 이들은 모두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뇌물수수 역시 중대한 범죄임에는 틀림없지만 4대강 사업 추진이라는 핵심적인 사항에서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실체에 대한 수사 및 처벌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공정위의 추가 조사에 따른 검찰 조사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갈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추가 조사에서도 이전 조사에서는 밝혀내지 못했던 4대강 사업의 실체에 대한 조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청산할 의지가 있느냐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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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MB-박 대통령, 합을 맞췄기 때문이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물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종교단체와 시민단체들은 ‘4대강 사업’의 책임자인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을 향해 직접 칼을 들이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친이 대 친박’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됐다. 이후 중요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박근혜 당시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여당과 같은 역할을 했다. 특히 MB정권의 국정 파탄으로 정권교체 요구가 높았던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는 MB와의 선긋기를 분명히 하며 국민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친이 대 친박’이라는 표면적 대립관계를 이용해 정권 승계를 정권 교체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의혹이 정점에 이르는 부분은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 건인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MB정부 말에 벌어졌다는 점이다. 당시는 박 대통령이 후보인 시절이다. 그런데 중요한 국가기관인 국정원을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가 지시해 움직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그렇다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박 후보를 위해 스스로 국정원은 물론 국방부까지 동원해 댓글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 또한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그만한 노력을 들이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 역시 그에 반하는 이득이 있어야 하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둘 사이의 ‘밀약설’ 또는 ‘대선담합설’이 흘러나온다.
‘설’들의 내용은 이렇다. 4대강 사업은 대표적인 MB의 아킬레스 건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이 흔들리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그렇다. 지난 대선을 코 앞에 두고 박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사이에 ‘빅딜’이 이뤄졌다.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 개입’을 진행하는 대신 박 대통령은 ‘4대강 사업’ 등 이 전 대통령의 실책 등을 묻어두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4대강 사업 청산 작업에서 미적대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설’들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앞으로 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향해 보다 날카롭고 긴 칼날을 들이대지 않는 한 ‘설’들은 더욱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