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민의힘은 일부 보수단체의 3‧1절 태극기집회 강행 예고에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극우단체는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대규모 도심집회를 중단해야 하며 정부는 이게 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도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보수단체 집회를 두둔하고 소속 의원들을 내보낼 것이냐”며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나서 이번 집회에 반대한다는 것을 천명하기 바란다”고 공세를 펼쳤다.
국민의힘은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국민의힘으로서는 국가 기념일만 되면 요구 받는 태극기집회에 관한 태도 표명이 달가울 리 없다. 매번 중요한 고비마다 태극기집회와 엮이며 정치적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핵심 지지기반인 강성보수층을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더 난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에 직접 출마하는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은 강성보수층을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나 전 의원과 오 전 시장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다.
나 전 의원 쪽이 조금씩 앞서지만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양쪽 모두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려면 핵심 지지층을 놓쳐서는 안 되는 상황에 있다.
하지만 당내 경선 이후의 선거일정을 고려하면 강성 보수층과 얽히는 일이 달갑지는 않다. 자칫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극우 정치인으로 찍히면 제3지대 후보와 벌일 보수야권 단일화, 민주당 후보와 벌일 본선에서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후보들의 고민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나 전 의원은 선거 초반 보수 선명성을 강조하다가 최근 들어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나 전 의원은 1월17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좌파가 짬뽕을 만든다면 우파는 짜장면을 만들어야 한다”며 “둘 다 먹고 싶다고 큰 그릇에 짬뽕과 짜장을 부어 섞어 주지 않는다”고 썼다. 어정쩡하게 좌파의 정책을 따라하기보다는 우파 본연의 정책을 더 잘 다듬어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파격적 복지공약을 내놓으며 당내 경선 예비후보들로부터 ‘나경영’이라는 조롱 섞인 야유를 들을 정도로 보수 색깔을 희석하는 노력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은 9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미래세대를 위해 ‘나경영'이 돼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불필요한 예산을 걷어내고 바로잡으면 신혼부부와 청년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인사인 진대제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나 프로파일러로 유명한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 등 보수색이 덜한 인물들을 선거캠프에 영입한 것도 중도로 외연 확장을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마냥 중도층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오 전 시장은 나 전 의원을 향해 ‘강경보수’라고 비판하며 중도로 외연 확장에 약하다는 점을 꼬집고 있지만 정작 본인도 ‘태극기 부대와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은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2018년 국방백서에 ‘북한=주적’ 표현이 삭제된 데 이어 2일 공개된 2020 국방백서에서도 ‘북한은 적’이란 표현이 빠졌다”며 문재인 정부의 안보의식을 비판했다.
그는 핵무장 지렛대론,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프로그램 등 핵무기 옵션을 논의해야 한다는 뜻도 보였다. 강성 보수층에게 더 호소력 있는 안보 의제를 내놓은 것이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오 전 시장의 글이 게시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수십년 전 낡은 색깔론 레퍼토리로 뭐가 되겠는가”라며 “이러면 태극기 부대원이 된다”고 비판했다.
요컨대 '보수 집토끼'는 나 전 의원이나 오 전 시장에게 가까이 하기도 멀리하기도 어려운 대상인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