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배임 혐의 등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
이재현 CJ그룹 회장.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포탈 및 횡령 혐의, 형법상 배임 혐의로 징역 2년6월 실형 선고.
기업 총수들이 하루 차이를 두고 받은 선고의 결과다. 양형은 큰 차이가 없지만 집행유예와 실형은 하늘과 땅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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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현 CJ그룹 회장. |
무엇이 두 회장의 운명을 갈랐을까?
이재현 회장은 15일 재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한 데다 배임 혐의에 대해서도 특경법 대신 형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통상 형법상 배임죄는 특경법상 배임죄보다 처벌이 가벼워진다. 형량이 줄어들면 집행유예 선고를 받아내기 쉽다. 현행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에만 선고가 가능하다.
이 회장은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6개월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집행유예 선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 총수=집행유예’ 공식이 깨진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기대가 더욱 커졌던 것은 하루 앞서 열린 윤석금 회장에 대한 재판에서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이 회장과 같이 1천억 원대 배임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받았지만 감형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윤 회장에 대해 재판부는 기업경영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윤 회장이 사재 1800억 원을 출연하는 등 피해 변제를 위해 노력한 점, 개인 비리가 발견되지 않는 점 등도 고려됐다.
반면 이 회장에 대해 재판부는 “재벌 총수라 하더라도 법질서를 경시하고 개인 이득을 위해 세금포탈 등 범죄를 저지른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두 회장의 운명이 갈린 지점이 범죄행위를 통해 개인 이득을 취했느냐는 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윤 회장이 사재를 털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은 반면, 이 회장은 개인 이득을 위해 기업에 피해를 입힌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이 회장 측이 내세운 건강상의 이유와 경영 복귀 필요성은 이번 재판에서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회장의 건강과 국가 경제적 차원의 경영복귀의 필요성 등을 감안하더라도 개인의 이익을 위한 조세포탈 등의 재산범죄는 엄중히 처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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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
특히 이 회장의 건강문제는 양형요소가 아닌 형의 집행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엄격한 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이 회장의 실형 선고는 2010년대 들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기록된 실형 선고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번 판결은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 총수들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조 회장은 2003년부터 그룹 임직원들에게 5천억 원의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이 과정에서 세금 1500억원을 탈세한 혐의로 지난해 1월 기소됐다. 조 회장은 또 700억 원대 횡령과 200억 원대 배임 혐의도 받고 있다.
과거 재벌총수들은 이 회장과 유사하게 배임, 횡령, 탈세를 저지르고도 줄줄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도 모두 집행유예로 판결을 받아 경영활동에 제약을 받지 않았다.
최근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등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상급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모두 풀려났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