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통적 리더십을 받아들여 회장에 취임할지 아니면 통념을 뒤집고 회장 없는 경영체계 실험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26일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에서 회장이 존재하지 않게 됐다. 1961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삼성물산 회장에 오른 이후 59년 만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이건희 회장과 함께 권오현 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이 재직하고 있었으나 정기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룹 내 회장 부재상황을 맞았다.
현재 오너가 있는 10대 그룹 가운데 회장이 없는 곳은 삼성그룹이 유일하다.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삼성그룹 총수이지만 여전히 부회장에 머물러 있다.
이 부회장은 2014년 이후 실질적으로 삼성그룹의 경영을 책임져 왔다. 그동안 부친 이건희 회장을 의식해 회장에 취임하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제 명실공히 삼성그룹을 물려받게 된 이상 회장에 오를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 부회장은 최근 현장경영과 해외경영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등 세계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커진데다 반도체산업 재편이 일어나고 있어 오너경영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해 불확실성을 낮추고 안정적 경영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재계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이 부회장 세대의 오너경영인들이 회장에 취임하면서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는 것 역시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다만 이 부회장이 총수가 곧 회장과 동일시되는 과거의 경영체제를 답습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점은 회장 취임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다. 이 부회장은 과거 재판에서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 삼성그룹 회장”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5월 대국민 사과에서는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향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새로운 경영체제의 틀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굳이 회장에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2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재판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는 것들인 만큼 적어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은 회장 취임을 미룰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과 별개로 전문경영인의 회장 승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은 이전에도 경륜이 깊은 전문경영인을 회장에 앉혀 책임경영을 고도화함과 동시에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임관 전 삼성전자 회장, 이수빈 전 삼성생명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수빈 전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동안 삼성그룹 회장 역할을 일정부분 수행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당장 회장으로 취임하지 않는다면 이와 비슷하게 회장 공백을 메울 가능성도 있다.
전문경영인 회장이 나온다면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장 유력하다. 올해 초 신종균·윤부근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김 부회장은 이 부회장을 제외하고 삼성그룹 전체에서 유일한 부회장으로 남아있다.
김 부회장은 40년 동안 삼성그룹에 몸담으면서 반도체 사업 성장에 기여했으며 현재는 삼성전자의 반도체비전2030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에 동행하며 존재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