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정부과천청사에 마련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둘러본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출범을 놓고 국민의힘에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 대표가 공수처 출범을 관철해 국민의힘에 끌려가지 않고 결단하는 리더십을 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지지율이 하락세인 데다 얼마 전까지 강조했던 협치와 거리가 있는 결정인 만큼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15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회의에서 “이 대표가 인품이 있고 중후한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망이 크다”며 “공수처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것은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려는 이 대표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실망스러운 일이 되고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의 발언은 14일 이 대표가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함께 과천정부청사 내 공수처 사무실을 방문해 국민의힘을 강도 높게 압박하는 발언을 내놓은 데 대응한 것이다.
이 대표는 아직 비어 있는 공수처를 둘러본 뒤 “공수처법이 제정된 게 지난해고 공포된 것이 9개월 전, 사무실이 주인을 기다린 지도 석 달인데 공수처장 임명을 위한 몇 단계는 절차 가운데 최초의 입구도 못 들어가고 있다”며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에 26일까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을 제안해 달라고 통보했는데 열흘 남짓 남았다”며 “볼썽사나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루라도 빨리 적극적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가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비판을 받아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14일 공수처 사무실에서 내놓은 이 대표의 발언은 이례적으로 강도가 높다.
이 대표는 의원들에게도 입단속을 강조할 만큼 언행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번 발언은 공수처 출범을 향한 이 대표의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이 26일까지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추천하지 않으면 야당의 거부권을 삭제하는 내용이 담긴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까지 정해 뒀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국회에서 소란을 겪으며 공수처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수처 출범을 관철할 것이라는 시선이 많다.
국민의힘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다 공수처를 출범이 더 미뤄지면 이 대표는 리더십에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4월에 서울시장 등 재보궐선거가 치러진다는 점, 이 대표의 당대표 임기가 내년 3월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정기국회는 이 대표가 지도자로서 역량을 보여줄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이 대표가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이는 데 따르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 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 ‘우분투’를 들며 협치 의지를 밝힌 것이 불과 한 달여 전이다. 공수처 출범 강행은 당대표에 취임한 직후 내세웠던 협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된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향한 여론도 그리 좋지 않다.
라임과 옵티머스펀드사건을 두고 국민의힘은 특검을 요구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서해에서 벌어진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사건도 여전히 뇌관이 살아있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이다가는 자칫 거대 여당의 오만으로 비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론 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15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놓고 부정평가가 50.0%, 긍정평가가 45.4%로 9월1주 이후 계속 부정평가가 우세한 상황이다.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도 전주보다 4.3%포인트 낮아진 31.3%로 조사됐다. 국민의힘이 30.2%로 두 당의 지지율 차이는 오차범위 안이다.
이 대표가 10월 들어 당 최고위원회 같은 공개적 자리에서 국민의힘 향해 공수처 출범을 요구하고 26일까지를 시한으로 못 박는 등 행보도 역시 여론을 의식한 명분쌓기라는 시선이 나온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기에 앞서 민주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으로 볼 여지가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