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 SMIC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MIC는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아 미국 장비나 기술 수입이 어려워져 공장 증설은 물론이고 미세공정 개발에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신 비교적 덜 강경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다음 대통령에 오르면 제재가 완화할 수 있다는 데 실낱 같은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1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MIC는 미국의 제재에 대비해 주요 반도체장비와 자주 교체해야 하는 부품 등을 상당량 비축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는 기존 파운드리사업을 간신히 지속하는 데 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CNA는 “SMIC는 미리 준비했지만 여전히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램리서치, KLA 등 미국기업의 장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앞으로 SMIC에 관한 제재의 영향이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CNN은 “SMIC는 업계 리더인 삼성전자 및 대만 TSMC보다 3~5년 뒤떨어져 있다”며 “미국 기술에서 단절되면 훨씬 더 뒤처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SMIC는 3분기 기준 파운드리시장 점유율 4.5%를 차지했다. 중국에서는 1위, 세계에서는 5위 수준이다.
당초 SMIC는 올해 말 7나노급 반도체의 초도 생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파운드리기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더 미세한 반도체회로를 구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반도체는 미세한 회로를 갖출수록 성능과 전력 효율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현재 7나노급 이하 공정을 제공하는 파운드리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SMIC는 사실상 TSMC와 삼성전자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제재가 계속되면 SMIC의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현재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들이 미리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SMIC에 장비와 소재 등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도체기업이 더 수준 높은 미세공정을 개발하고 새로운 생산시설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첨단장비를 갖춰야 한다. 미국 기업과의 거래는 이런 장비를 구하기 위해 필수다. 미국 블룸버그에 따르면 SMIC 장비 가운데 최대 50%가량이 미국에서 나왔다.
중국 기업들은 SMIC가 요구하는 장비를 공급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SMIC를 포함한 중국 파운드리기업은 90나노급 이하 공정, 특히 12인치 웨이퍼 장비에 관해서는 미국 기업에 의존해야 한다”며 “앞으로 5~10년 안에 중국 기업으로부터 모든 공정에 관한 장비를 확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퀄컴 등 SMIC 고객사들은 미국의 제재에 대비해 이미 SMIC를 대체할 새로운 파운드리기업을 물색하고 있다. 퀄컴만 해도 SMIC 매출의 13%가량을 차지해 타격이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SMIC 스스로도 앞서 4일 성명을 통해 "일부 미국산 설비, 부품, 원재료 등 공급이 지연되거나 불확실해질 수 있어 미래 생산과 경영에 상당히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SMIC가 바이든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무거운 관세를 매기는 등 무역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오히려 미국경제가 손해를 입었다고 본다. 이에 따라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오르면 미국과 중국 갈등이 완화할 수 있다는 시선이 일각에서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바이든 후보의 정책은 보호무역주의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체제에서 교역과 통산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미국 정계에서는 바이든 후보 역시 SMIC를 상대로 제재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다.
트럼프 정부는 SMIC가 생산하는 반도체가 중국군에서 사용돼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이든 후보로서는 SMIC에 관한 제재를 완화할 때 안보를 등한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첫 대선 유세를 시작했다”며 “바이든 캠프는 11월3일 투표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책을 두고) 물러나는 데서 정치적 이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한 번 제재가 시행되면 어떤 대통령이라도 유약한 면모를 보이지 않고 취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