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윤활유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의 지분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은 전기차배터리공장 증설에 필요한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알짜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의 지분을 매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14일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 매각설과 관련해 “재무 건전성 확보와 신규사업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는 방향성 자체는 설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루브리컨츠의 매각주관사를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으로 선정한 것은 사실”이라며 “매각대상 지분이나 예상가격 등 구체적 내용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SK루브리컨츠는 완제품인 윤활유보다 윤활유의 기초원료인 윤활기유 사업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회사다. 자동차용 윤활기유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라있다.
정유업계는 SK루브리컨츠를 놓고 오일메이저 회사들이나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노릴 만한 매력적 매물로 보고 최소 3조~4조 원대의 기업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한다.
SK이노베이션은 내부적으로 기업가치를 5조 원 수준으로 잡고 공개입찰을 진행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이 SK루브리컨츠를 상장하는 대신 지분 매각으로 진행하는 이유는 과거 세 차례 상장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해 네 번째 상장 도전은 부담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정유업황은 코로나19에 따른 석유수요 감소와 저유가로 상황이 좋지 않아 상장이 되더라도 투자심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 추진에 앞서 이미 다른 자회사의 상장을 추진하는 일에도 속도를 높였다.
앞서 6월 SK이노베이션은 소재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상장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국내외 증권사에 발송했다.
당시만 해도 SK이노베이션은 상장을 신중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7월 진행한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상장시점을 내년 상반기 안으로 확정했다.
김준 사장이 자회사를 통한 현금 확보를 서두르는 것은 SK이노베이션의 단기차입금이 급증하고 있어 현금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단기차입금은 2018년 말 1537억 원에서 2019년 말 1조1319억 원으로 약 1조 원가량 늘었다. 이후 3개월 만에 3조 원가량이 추가로 늘어나 올해 1분기에는 4조758억 원을 보였다.
2017년 말 2428억 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볼 때 2018년 말부터 1년 6개월 만에 4조 원에 약간 못 미칠 정도로 단기차입금이 증가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3조7253억 원 보유하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보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이 더 많아진 것인데 이는 김 사장이 전기차배터리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생산능력은 2018년 4.7GWh(기가와트시)를 시작으로 2020년 상반기 19.7GWh에 이르렀다.
김 사장은 여기에 배터리생산능력을 2023년 71GWh, 2025년 100GWh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현재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김 사장은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배터리사업을 ‘우선 수주 나중 증설’ 전략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2019년 말 기준으로 수주잔고를 484GWh 만큼이나 확보해 둔 터라 김 사장은 증설투자를 지속해야하는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배터리시장의 후발주자라는 점도 김 사장이 시장 입지를 다지기 위한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요인이다.
김 사장은 2019년 3월 미국 조지아주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기공식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2025년까지 빠르면 2023년까지 전기차 배터리시장 점유율 20%를 달성해 글로벌 톱3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성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