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회장이 최근 정 회장을 만난 뒤 정 회장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에 앞서 이 회장과 정 회장은 25일 서울 모처에서 만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문제를 논의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확실히 결정해준다면 매각조건을 완화해 줄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 회장이 한발 양보하면서 정 회장에게 공을 완전히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이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인수와 관련해 확답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 관심은 정 회장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에 쏠린다.
정 회장이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을 제시하면 사실상 판을 깨겠다는 의지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 회장이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최근 한 대형 법무법인을 추가로 선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 인수의지가 여전히 있다면 채권단과 충분히 조율 가능한 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5천억 원의 출자전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채권단은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영구채 5천억 원을 인수했다. 이 영구채 금리가 7%대로 다소 높게 책정돼 산업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이자부담이 만만치 않다.
채권단이 차입금 상환을 유예해준다고 하더라도 영구채의 이자부담이 큰 상황에서는 재무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채권단이 출자전환하면 HDC현대산업개발은 당장 아시아나항공 차입금 상환부담이나 이자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주요 주주로 둘 수 있다. 앞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든든한 우군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출자전환은 채권단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카드다. 그러나 국적 항공사의 정상화와 계약 성사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이 무산되면 채권단이 HDC현대산업개발도 없이 아시아나항공을 완전히 떠안고 직접 관리해야 하는데 이보다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정몽규 회장이 차입금 상환 유예나 구주 가격 조정 등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큰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차입금 상환 유예는 이자부담은 계속 안게 되는 셈이고 구주 가격은 전체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말 아시아나항공을 2조5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3228억 원은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6868만8063주를 사들이는 금액이다. 나머지 2조1772억 원은 아시아나항공 유상증자에 쓰기로 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구주 가격은 1주당 4700원에 책정됐는데 현재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4천 원대 안팎을 오가고 있다. 구주 가격을 1주당 4천 원으로 계산한다 해도 전체 구주 가격은 2700억 원대로 원래 가격과 500억 원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채권단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요구를 최대한 유연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에 따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특히 이동걸 회장은 정몽규 회장보다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매각이 무산되면 가장 먼저 이 회장에게 책임의 화살이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의 임기도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금호그룹도 아시아나항공 매각대금에 기대고 있는 만큼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은 26일 상표권 사용계약을 변경해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석 달 뒤에 기존 상징인 ‘날개’ 마크를 뗄 수 있도록 했다.
어느 한 쪽이 서면으로 상표권 사용계약을 해지 통지하면 1개월 뒤 해지되도록 바꿨는데 해지 통지는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와 금호산업의 주식매매계약에 따른 거래 종결일로부터 두 달이 지나면 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