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100%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상장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총괄사장으로서는 이 상장을 통해 확보할 현금이 절실한데다 과거 SK루브리컨츠의 상장에 실패한 사례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0일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기업공개(IPO)는 이제 본격적 검토를 시작한 단계로 방식이나 시점 등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며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시장 변화를 지켜보며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생산하는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은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과 함께 2차전지의 4대 핵심소재로 꼽힌다. 전기차시장의 성장과 맞물려 2025년에는 수요가 지난해의 6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업의 가치를 놓고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3조5천억 원으로,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조8천억 원으로 평가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하반기부터 휘는(플렉서블)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투명 폴리이미드필름(FCW)의 양산도 시작한다. 이 제품도 접는(폴더블) 스마트폰의 성장과 맞물려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업의 가치까지 생각하면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기업가치가 5조~6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김준 사장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상장을 구주매출 방식으로 진행한 뒤 SK이노베이션이 확보할 현금을 SK아이이테크놀로지뿐 아니라 자체사업인 전기차배터리에도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사장은 1월 열린 글로벌 전자제품 박람회 ‘CES2020’에서 “SK이노베이션과 사업자회사들이 키워 온 배터리와 최첨단 소재의 사업역량이 E-모빌리티(전기 이동수단)의 발전 속도를 앞서 나가지 못하면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며 과감한 투자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를 고려하면 김 사장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 상장에 성공하기 위해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는 조심스러움을 보일 수밖에 없다.
김 사장으로서는 SK이노베이션이 윤활유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의 상장에 3차례 실패했던 사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은 2017년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에 올라 같은 해 11월 SK루브리컨츠의 상장 3수를 시도했다. SK루브리컨츠는 2013년과 2015년에도 상장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이 때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배터리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투자를 준비하는 단계였다. SK루브리컨츠의 상장을 통해 최소 1조 원 수준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4월 SK루브리컨츠의 상장을 철회했다.
애초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의 상장 공모에서 공모가 10만1천~12만2천 원을 기대했는데 실제 공모가격이 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은 2016년과 2017년 연속으로 3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재무적으로 안정돼 있었다. 때문에 SK루브리컨츠의 상장이 무산됐어도 사업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SK이노베이션은 재무구조 악화의 우려를 안고 있어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1분기 기준으로 순차입금이 8조7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보다 2조1천억 원이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사장은 앞서 4월 미국에 2번째 전기차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2023년까지 8900억 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그런데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에만 영업손실 1조7천억 원을 봤다.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올해 영업손실 1조3천억 원을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현금 창출력이 악화하는 가운데 재무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 전망을 낮췄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20GWh(기가와트시) 안팎의 전기차배터리 생산능력을 2023년 70GWh, 2025년 100GWh로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김 사장은 투자에 따른 재무부담을 완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 사장에게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상장은 SK루브리컨츠의 상장을 시도할 때보다 성공이 더욱 절실하다는 얘기다.
이에 앞서 8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기업공개 주관사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제안 요청서(RFP)를 국내외 증권사들에 발송했다.
제안서 접수와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7월 안에 주관사를 선정하기로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