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서울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을 놓고 검찰의 날카로운 창 공격에서 여론을 방패로 세울 수 있을까?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수사에서 기소 여부를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검찰과 벼량 끝에서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부회장은 검찰의 손에 수사결과를 온전히 맡기기보다는 최근 변화하고 있는 삼성그룹을 향한 여론에 의지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2일 소집을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2018년 검찰 수사의 적정성을 평가하고 수사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현재까지 8번의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렸는데 검찰이 아닌 사건 관계인이 심의를 요청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대기업 총수로서도 첫 사례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250명의 수사심의위원 중 15명을 무작위로 추첨해 구성된다. 수사심의위원회 전 단계인 검찰시민위원회는 200여 명의 일반 시민위원 중 15명을 뽑아 수사심의위원회에 사건을 넘길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일반시민과 각 분야 전문가라는 차이는 있지만 검찰시민위원회든 수사심의위원회든 모두 검찰 외부인사들이기 때문에 여론의 동향이 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은 최근 코로나19 위기 속 한국경제를 이끄는 기업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부각하고 있다. 의료용품와 생필품 300억 원어치를 지원한 것은 물론 해외 마스크 수입, 중소기업의 마스크 생산 확대 등에 기여했다.
이 부회장도 중국 시안 반도체공장을 방문해 글로벌 경영행보에 의욕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평택에서 파운드리와 낸드 생산라인 신설 계획도 밝혔다. 글로벌 경기둔화 우려 속에 총수로서 경영 리더십을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사과를 통해 이전의 잘못들에 유감을 표명하고 향후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삼성 준법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삼성그룹의 대대적 변화를 공식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 수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여론을 형성하게 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의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에는 이러한 점이 고려된 것으로 읽힌다.
블룸버그는 3일 이경묵 서울대 교수를 인용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지원하고 과거 잘못을 사과한 일이 삼성그룹과 이 부회장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여론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이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 연루돼 구속수감된 데 이어 법원의 재판을 받고 있는 점도 수사심의위원회 판단에 변수가 될 수 있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삼성물산 합병을 놓고 경영권 승계 논란이 불거져 수사가 또 진행되는 점을 수사심의위원회가 고려해주길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을 향한 검찰의 태도는 강경하다. 검찰은 4일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다만 도주와 증거인멸 등 우려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할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 측이 검찰의 수를 미리 읽고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는 시선도 나온다. 검찰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심의위원회 심의에는 강제성이 없어 검찰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심의결과가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나온다면 검찰로서는 향후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적잖은 부담을 안게 된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주요 사건인 만큼 소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검찰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자칫 향후 재판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가 이뤄졌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전문가 검토와 국민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 보려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수사심의위원회 절차를 통해 처분했더라면 국민들도 검찰 결정을 더 신뢰했을 것”이라고 불만을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