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받은 보수 301억 원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전액을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회사경영에 실제로 기여하지 않았거나 회사의 경영부실이 심할 경우 보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긍정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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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좋은 일이고 백 번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을 놓고 봤을 때 궁색하다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다.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도 어쩔 수 없이 나온다.
최 회장이 실기한 탓이다. 최 회장의 연봉이 발표될 때나 최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모든 계열사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난다고 밝힐 때 이번 결심은 얼마든지 발표할 수 있었다.
뒷북을 쳤다. 그러다 보니 의도에 대한 의심이 나온다. 일부에서 사회적 비난여론을 무마하고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가석방 혹은 특별사면을 위한 포석을 깔아놓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 회장은 지난 달 초 연봉이 공개되며 여론의 호된 비난을 받았다. 최 회장이 받은 연봉은 301억 원이었는데 공개된 오너 가운데 가장 많았다. 액수도 액수이지만 최 회장은 지난해 1월부터 구속수감돼 있어 사실상 경영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거액을 받아 도덕성 논란까지 불렀다.
물론 SK그룹은 301억 원 가운데 207억 원은 구속 전인 2012년도 계열사 실적 호전에 따른 성과급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 해도 지난 1년 ‘옥중경영’의 대가로 받은 돈이 94억 원인 셈이다.
특히 SK그룹의 오너일가와 전문경영인의 연봉 격차가 매우 컸다. 오너일가와 전문경영인 간 보수 격차가 가장 큰 기업 1위에서 3위까지를 모두 SK그룹 계열사가 차지했다. SK와 SKC&C, SK이노베이션의 보수 격차가 적게 6.7배에서 많게 7.95배까지 났다. 이들 계열사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사람이 바로 최 회장이다.
도덕성 논란을 피해갈 수 없는 대목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낱낱이 공개되고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뒤늦게 최 회장은 지난해 받은 급여를 좋은 일에 쓰고, 올해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때늦었다. 이미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수감과 입원으로 보낸 2013년의 급여와 상여금 200억 원을 전액 반납했다고 밝혔다. 또 허창수 GS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각각 경영난에 시달리는 GS건설과 한진해운으로부터 올해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 회장의 발표는 다른 회장들의 움직임에 뒤늦게 편승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뒤늦게 지난해 급여를 포기하다 보니 모든 회계처리가 끝나 반납하는 절차도 복잡해졌다. 그래서 최 회장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했다. SK그룹은 이번 결정에 대해 고액연봉 논란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결정을 못했을 뿐이지 이전부터 검토하던 사안이라고 했다.
그런데 SK그룹은 어떻게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했다. 발표가 급조됐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SK그룹의 고위관계자는 “최 회장이 지난해 연봉을 개인적으로 쓸 생각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유의미한 공익적 용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최 회장은 지난 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이제 최 회장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가석방이나 특별사면뿐이다. 최 회장이 지난해 받은 연봉을 포기하고 올해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결정이 이런 방법을 의식한 카드였을까?
좋은 일을 하고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의심은 SK그룹이 자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