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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테랑' 스틸컷. |
류승완 감독에게 ‘B급 액션 키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베를린’으로 7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감독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 같은 B급 정서가 가득한 작품들에서 훨씬 더 빛나는 재능을 보였다.
영화 ‘베테랑’도 유치한 음악, 과장된 캐릭터, 속도감있는 액션 등으로 B급 액션의 진수를 선사한다.
베테랑은 개봉 9일 만인 13일 400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올 여름 ‘대박’ 행렬에 합류했다.
베테랑은 류승완 감독이 선보였던 전작들의 계보를 잇는다는 점에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정의감으로 충만한 열혈형사가 통쾌하게 악당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는 형사액션물에서 식상할 정도로 변주돼 왔다.
그런데도 왜 관객들은 베테랑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대체로 ‘유쾌, 상쾌, 통쾌’로 요약된다. 무겁지만 웃기고 답답하지만 시원하며 억울하지만 후련하다는 소감이 많다.
이런 반응은 관객들이 자신을 주인공과 동일시할 수록 더욱 강해진다.
광역수사대 소속 서도철 형사(황정민)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싸움도 잘하고 욕도 잘하며 직업적으로 유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한 건’해서 승진할 꿈에 부풀어 있고 전세금 대출을 고민하는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베테랑에 대한 관객들의 열광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관객들이 서도철 형사와 함께 분노하고 억울해하며 가차없는 응징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가 마주한 ‘악’ 때문이다.
조태오(유아인)는 악의 축이다. 그의 악행에 설명이나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조태오는 절대악에 가깝다.
하지만 조태오라는 인물을 둘러싼 조건을 살펴보면 그가 과연 절대악이기만 할까 의문이 든다. 조태오가 재벌 3세라는 것, 이것만으로도 류승완 감독은 전작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매끈한 수트를 차려입은 잘 생긴 재벌 3세는 드라마에 너무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극단적 괴물로 그려진 재벌 3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태오와 같은 재벌 3세가 실재하는 지는 중요치 않다. 그런 괴물을 만들어낸 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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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승완 감독. |
재벌과 재벌 3세는 우리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재벌 1세대, 적어도 2세대는 여러 논란에도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바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3세는 그 자체만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존재다. 설령 조태오처럼 마약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면서 오직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드는 사이코 범주 인물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또 그를 비호하는 자본과 권력의 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조태오의 물리적 폭력보다 더 잔인한 '보이지 않는' 폭력의 주범들이다.
서도철 형사가 조태오를 보기 좋게 때려 눕히고 수갑을 채우는 장면은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지만 사실상 판타지를 통한 대리만족에 불과하다.
조태오가 저지른 죄목을 열거하면 이렇다. 폭행교사, 증거인멸, 마약류 취급 및 복용, 뇌물수수, 공무집행 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그는 영화 마지막에서 수갑을 찬 채 죄수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서면 궁금해진다. 조태오는 어떤 판결을 받을까, 집행유예로 풀려날까.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나는 것은 아닐까.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