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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주총회서 의사봉 두드리는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
주주들의 호통이 이어졌다. 지난달 28일 열린 KB금융지주 정기 주주총회장이었다. 분위기는 싸늘했다. 임 회장은 그저 묵묵히 야단을 맞아야 했다.
임 회장은 주주 달래기에 안간힘을 썼다. KB금융지주의 배당금이 주당 500원으로 지난해 600원에 비해 떨어졌지만 순이익 감소를 감안할 때 배당률은 오히려 높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순이익이 떨어진 점을 고려해 이사 연간보수한도도 50억 원에서 25억 원으로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주주들의 호통은 그치지 않았다. 한 소액주주는 “은행중 성적이 최하이고 배당도 최하”라며 “이익이 적게 났으면 보수도 당연히 적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주총에서 주주들은 신한금융과 하나금융과 비교해 KB금융의 위상추락과 수익감소, 신뢰추락 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이날 주총은 임 회장이 처해있는 형편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때문일까? 최근 임 회장이 독해졌다는 말이 주변에서 많이 나온다.
임 회장은 ‘금융계의 신사’라는 말을 들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7월 임 회장이 KB금융지주 사상 처음 이사회 9명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회장에 선임된 것도 이런 리더십 덕분이었다.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을 해결하는 과정도 임 회장의 리더십이 그대로 드러났다. 노조는 임 회장이 KB금융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낙하산 임명이라고 주장하며 출근을 저지했다. 임 회장은 대화를 통해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다독여서 열흘 뒤 출근에 성공했다.
그런 임 회장이 최근 들어 강하게 조직을 몰아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국민은행에서 기세등등하기로 유명한 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점이다.
노조는 지난 9일 임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등 6명을 특수체포 감금혐의로 고소했다. 노조는 주주총회 당시 회사가 100명의 직원과 청원경찰을 동원해 노조원들을 불법감금하고 주총장 입장을 막아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윤영대 노조위원장은 “당시 주주총회에 입장해 불법경영을 추궁하려 했는데 회사가 입장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회장에 취임할 때 출근을 저지하는 노조를 상대로 긴 대화를 했던 점을 고려하면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임 회장의 리더십 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부단속과 통제를 확대하고 있다. 인사권을 행사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KB금융 수뇌부에 자기사람을 앉혀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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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8일 서울 영등포구 KB국민은행 여의도본점 강당에서 열린 KB금융지주 정기주주총회에 앞서 주주들에게 인사 하고 있다. <뉴시스> |
◆ 임영록, 조직장악에 나서다
임 회장은 국민은행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잇단 비리를 조직장악의 계기로 삼으려는 것 같다.
올해 초 KB국민은행에서 국민주택채권 횡령사고가 터졌을 때 임 회장은 보고를 받고 “즉각 검찰에 고발하고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또 서울 강서지점에서 1조 원의 허위서류 발급이 적발됐을 때도 곧바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동안 작은 금융사고는 임기중 어떻게 하든 숨기고 내부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게 금융권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임 회장은 이 관행을 끊어버렸다. 임 회장은 “새로운 환부가 생겨난 게 아니라 진작부터 곪았던 게 한꺼번에 터지는 것인 만큼 성장통으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임 회장의 환부 도려내기는 지난 2일 발표된 인사 쇄신안으로 구체화했다. 인사 쇄신안은 지난 1월 출범한 KB금융 조직문화 쇄신위원회가 만든 것이다. 임 회장은 이를 놓고 "더 건강하고 투명한 조직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사쇄신안의 핵심은 두가지다.
첫 번째 그동안 국민은행 내부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인사청탁을 뿌리뽑는 것이다. 국민은행은 내부에 파벌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노조도 3개나 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으로 나뉘어 출신성분을 따진다. 임 회장조차도 회장에 오를 때 국민은행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낙하산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런 끼리끼리문화는 인사 때마다 줄대기하게 만들었다.
임 회장은 앞으로 부서장과 직원인사를 한 번에 실시하는 이른바 ‘원샷인사’를 하기로 했다. 또 순혈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준법감시인이나 글로벌사업부장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외부인사를 수혈받기로 했다.
두 번째 내부통제 강화다. 그동안 KB금융지주는 비은행 계열사에 대해서만 감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은행도 감사하기로 했다. 은행을 감사하는 사람이 공개되는 감사실명제를 도입하고 내부비리를 제보하는 직원에게 주는 포상금도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늘렸다. 이달 말까지 그동안 불법행위를 한 직원은 스스로 잘못을 신고하면 정상을 참작하기로 했다.
지점장들에 대한 통제도 강화된다. 한 지점에서 한 건의 비리만 일어나도 그 지점장을 퇴출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실시한다. 지역본부장과 본부본부장 등 임원은 한 번의 경고 이후 퇴출하는 ‘투 스트라이크 아웃제’도 함께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지주회사의 감시체제를 넓히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조처로 임 회장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사회에 친정제체 구축한 임영록
임 회장은 친정체제도 구축하고 있다.
임 회장은 지난 3월 주총에서 사외이사들을 대거 교체했다. 총 5명이 교체됐는데 2명은 관료 출신이고 3명은 대학교수다. 정부에서 같이 일했거나 임 회장과 서울대 동문이다. 모두 임 회장과 인연이 닿는 사람들이다. 이사회 의장이 된 이경재 사외이사와 김영과 사외이사는 대표적인 '임 회장 사람'이다.
임 회장은 이사회 운영도 재편해 사실상 ‘임영록 체제’로 전환했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이사회운영회, 경영전략위원회, 리스크관리위원회, 평가보상위원회,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로 나뉜다.
이 가운데 특히 경영전략위원회 구조를 바꾼 점이 주목된다. 과거 어윤대 회장 시절 위원회에 회장과 은행장이 함께 참석했다. 그러나 임 회장은 이 위원회에 회장 혼자 참석하도록 바꿨다. 또 경영전략위원회에 사외이사 2명만 참석하던 것을 9명 모두가 참석하도록 했다. 사외이사로 들어온 임 회장 사람들이 늘어난 데 대한 자신감인 셈이다.
이런 조처들은 임 회장이 향후 중요한 경영전략 결정과정에서 은행장의 발언을 막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비은행부문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은행장이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것을 미리 막겠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또 계열사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사회 내부의 계열사 대표이사 후보추천 위원회의 경우 그동안 KB금융지주 회장과 사장, 그리고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임 회장은 KB금융지주 사장 직책을 없애면서 이 위원회의 구성을 회장과 사외이사 2명으로 단순화했다. 그만큼 임 회장의 힘이 더욱 세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