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총수 일가 경영권 분쟁의 여파가 재벌그룹 해외 계열사로 불똥이 튀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재벌개혁의 칼을 빼들며 대기업 해외 계열사에 대한 정보공개 확대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6일 열린 당정회의에서 대기업의 해외 정보공개 확대를 위한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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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9월2일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롯데센터 하노이' 오픈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은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뉴시스> |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당정은 자산합계가 5조 원이 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의 해외계열사 현황점검과 정보공개를 확대할 필요성에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기업총수가 보유한 해외계열사 지분과 해외계열사가 보유한 국내계열사 지분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김용태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은 “(현행법으로 해외회사가 국내회사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총수와 그 관련자들이 보유한 해외계열사 지분현황과 해외계열사의 국내출자 현황 공시를 의무화하는 데 당정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당정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상호출자가 제한된 대기업집단은 비상장기업이라도 최대주주 보유주식 현황 등을 공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해외법인은 이런 적용을 받지 않는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의 지배구조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벌기업들이 상호출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법인을 만들어 악용한다는 지적은 지난해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해외법인에 대해서도 상호출자를 하지 못하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정부와 새누리당은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더라도 기존 순환출자 고리는 기업들 스스로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정책위의장은 6일 “기존 순환출자까지 건드리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고 기업활동에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롯데그룹 사태에서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눈 밖에 난 계기는 중국사업에서 지난 4년간 1조 원이 넘는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것이 발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중국 해외법인 19곳의 누적 영업적자가 에비타(EBITDA;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기준 3200억 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롯데그룹의 해외 계열사의 실제 순손실규모가 1조 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지역에도 해외법인을 두고 진출했으나 해마다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롯데그룹의 실질적 국내 지주회사인 롯데쇼핑의 해외계열사 43개(지난해 말 기준)가 낸 총 당기순손실은 2088억 원으로 매년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손실액은 2011년 977억 원에서 2012년 2천억 원대까지 3년 새 100% 넘게 불어났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쇼핑을 통해 2007년부터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의 해외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백화점 부문은 현재 러시아·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지에 8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할인점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51개점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롯데그룹 해외사업의 경영실태는 정확히 파악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롯데그룹만의 사정이 아니다.
한국CXO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국내 10대 그룹의 독립 해외법인은 91개 국에 2055개로 집계됐다.
470개가 중국에 집중돼 있었는데 이 가운데 롯데그룹 해외계열사가 250개로 가장 많았다. LG그룹과 삼성그룹은 81개와 80개의 해외법인을 두었으며 미국법인이 다수를 차지했다.
국내 주요기업들은 국내시장에서 성장한계에 직면하자 너나없이 해외법인을 세우고 세계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해외계열사들은 국내법 규정을 받지않아 최대주주의 지분현황은 물론이고 영업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해외계열사들이 돈세탁을 통한 불법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등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검찰은 지난 3월 경남기업 비리의혹을 수사하면서 경남기업이 해외 페이퍼컴퍼니나 계열사를 통해 돈세탁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에 혐의점을 뒀다. 또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도 해외법인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 수법으로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가 드러나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