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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에 이어 신격호 총괄회장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신 회장은 28일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일으킨 쿠데타를 진압하며 롯데그룹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자리를 지켜냈다.
신 회장은 오너 일가 중 유일하게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로 남아 한일 롯데그룹 경영권을 완전히 확보했다.
롯데그룹 경영승계는 그동안 한국롯데의 경우 신동빈 회장이, 일본롯데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맡는 쪽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이 올해 들어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물러나면서 승계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한국 롯데그룹은 매출에서 일본 롯데그룹의 열 배가 넘는 규모다. 사실상 롯데그룹의 중심은 한국 롯데그룹에 쏠려 있다.
그런데도 신 회장이 왜 신 총괄회장까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하면서 일본 롯데그룹을 손에 쥐려고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롯데그룹의 정통성 확보다.
국내에서 롯데그룹이 고속성장해 재계 5위까지 올랐지만 그 뿌리는 일본 롯데그룹에 있다. 일본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1948년 설립한 일본에서 설립한 제과회사 롯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거둔 성공을 발판으로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한 것이 1967년이니 약 20년 가까운 차이가 난다.
롯데그룹의 기원이 일본 롯데에 있는 만큼 신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을 승계해도 곧 롯데그룹을 승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 어렵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을 승계하고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
지분구조로 봐도 한국 롯데그룹은 일본 롯데그룹에 종속돼 있다. 한국 롯데그룹은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로 연결돼 있는데 한국 롯데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는 호텔롯데다.
호텔롯데는 롯데그룹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롯데쇼핑 지분 8.83%를 보유하고 있고 롯데제과(3.21%), 롯데칠성음료(5.92%), 롯데케미칼(12.68%)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고르게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호텔롯데는 오너 일가가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신 일본 롯데홀딩스가 지분 19.07%를 소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이밖에도 일본 롯데상사가 출자한 펀드들이 75%가 넘는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 롯데그룹이 한국 롯데그룹의 상투를 틀어쥐고 있는 셈이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경영권을 손에 넣지 않으면 한국 롯데그룹의 독립경영을 장담하기 어렵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성장을 위해 한일 롯데그룹의 통합경영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 롯데그룹은 내수침체로 성장이 둔화한 상황이다. 신 회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해외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 5월 모디 인도 총리와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등 롯데그룹이 진출한 국가 리더들을 만나 투자확대방안을 논의했다. 신 회장은 또 뉴욕에 있는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롯데그룹과 일본 롯데그룹은 해외사업을 따로 벌여왔다. 이 때문에 효과적인 해외시장 공략이 이뤄지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과 일본 롯데그룹의 브랜드 파워를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이 한일 롯데그룹 경영권을 확보한 뒤 가장 먼저 한국 롯데그룹과 일본 롯데그룹이 공동으로 출자해 태국 면세점을 출점하기로 한 것도 해외사업에서 시너지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신 회장은 도쿄에서 열린 일본 금융사 대상 설명회에서 “과자의 해외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일본 롯데그룹이 제과분야에서 높은 기술력과 국제적 인지도를 갖춘만큼 이를 활용해 해외사업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한국 롯데그룹이 하고 있는 유통과 중화학사업은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면 적지 않은 자본과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과사업은 이보다 적은 투자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은 이달 들어 사상 처음으로 한일 롯데그룹 연결 재무제표를 발표했다. 2014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6조5천억 엔을 거뒀는데 일본에 본사를 둔 비상장기업 가운데 최대다.
닛케이신문은 한국의 경기침체로 롯데그룹이 해외진출을 서두른다고 분석하며 앞으로 면세점사업 등을 확대해 갈 것으로 내다봤다.
신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의 현금창출능력이 떨어지면서 일본 롯데그룹을 자금 조달처로 활용하려고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롯데그룹은 자산규모가 6조 원 수준으로 한국 롯데그룹에 비해 작지만 일본 자금을 조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롯데그룹이 한국에서 급격하게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적극적 인수합병이 있었다. 신 회장은 2004년부터 10여 년간 10조 원 가량을 들여 35개 기업을 인수했다. 그럼에도 롯데그룹은 2013년 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65.8%에 불과했다.
롯데그룹이 안정적 재무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롯데쇼핑의 현금창출능력과 함께 저금리로 일본 자금을 융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올해 3월 KT렌탈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에서 600억 엔 규모의 사무라이본드(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