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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뉴시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성사에 논공행상을 따진다면 누구 이름을 맨 윗자리에 올릴까?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의 이름이 첫 번째로 꼽힐 것으로 보인다.
최 사장은 1년 반 전에 삼성물산에 부임해 합병이 이뤄지기까지 삼성물산을 이끌어 왔을 뿐 아니라 합병 성사를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최 사장은 삼성그룹에 영입된 지 8년 만에 지주회사 사장이 됐다. 이 때문에 이재용 시대에서 최 사장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말들이 넓게 퍼지고 있다.
최 사장은 1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안이 통과하자 기자실을 찾아와 “합병에 찬성한 주주들은 물론 반대한 분들과 임직원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합병이 추진되는 동안 좀처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합병안이 가결돼 그 동안의 수고가 결실을 맺자 자신있게 기자들 앞에 나타나 감사인사를 전했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을 맡고 있는 김신 사장이 15일 주총을 앞둔 마지막 삼성 사장단회의에서 “회사가 정상적 경영활동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푸념할 정도로 삼성물산 임직원들은 합병추진 기간 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최 사장은 가장 바쁜 행보를 이어갔다.
최 사장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반대에 나선 지난달 초부터 수요 삼성 사장단회의에도 거의 참석하지 못했다. 최 사장은 7월1일 한 차례 수요 사장단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때도 예정된 기자단 브리핑을 소화하지 못하고 간단한 질의응답만 했다.
최 사장은 지난달 30일 합병효과를 설명하기 위한 기업설명회에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사장 가운데 유일하게 불참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중요한 자리에 최 사장이 불참한 것은 최 사장이 해외 기관투자자를 설득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과거 GE에서 오랜 기간 CEO로 재임하면서 쌓아올린 해외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 외국 투자자들과 접촉했다. 이번 합병 표대결이 외국계 자본이 합병안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벌어진 만큼 외국 투자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임무였다.
최 사장은 싱가포르와 홍콩 등 5차례 이상 출장을 다니며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설득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최 사장은 비록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구인 ISS와 컨퍼런스콜도 진행했다.
최 사장은 합병안이 통과된 뒤 “주총 합병결의가 예상보다 큰 차이로 통과된 것은 주주들이 합병 필요성을 인정해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 사장의 말처럼 박빙승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이번 주총 표대결에서 승부의 무게 추를 기울게 한 것은 해외 투자자들을 설득한 최 사장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그룹이나 국내에 이해관계가 없는 해외 투자자들이 모두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장에 따라 반대했을 경우 합병안은 통과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합병안 통과 뒤 그동안의 활동에 소회를 전하듯 “그동안 기업설명회를 다니며 쓴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앞으로 더 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사장은 “신중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 합병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사장이 합병 마무리를 언급하기는 했으나 최 사장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9월1일 합병이 완료되면 최 사장은 합병 삼성물산에서 대표이사 자리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최 사장이 합병 삼성물산 대표이사가 되면 2007년 삼성전자 고문으로 영입된 지 8년 만에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지주회사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중심으로서 성장해 갈 것을 감안하면 최 사장의 역할확대가 점쳐지는 대목이다.
물론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최 사장이 자리를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합병과정에서 최 사장이 보여준 움직임과 이재용 부회장의 신뢰를 고려하면 그룹 내에서 그에 맞먹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평소 최 사장으로부터 경영에 대한 조언을 듣는 등 각별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사장이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고리인 삼성물산의 건설부문을 맡을 때부터 최 사장의 역할에 기대가 컸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에서 이재용 시대에 최 사장이 삼성그룹 2인자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관건은 최 사장이 삼성그룹의 순혈주의를 극복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삼성그룹은 인사 때마다 순혈주의를 타파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순혈주의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최 사장은 삼성그룹 주요계열사 사장 가운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오너일가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외부영입 인사다. 최 사장이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고 글로벌 기업인 GE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몸에 밴 성향이 삼성그룹과 맞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