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중단과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손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의 펀드 투자 논란 등으로 금융위원회가 사모펀드 활성화정책에 추진동력을 잃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그동안 사모펀드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해왔지만 결국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라임자산운용은 14일 간담회를 열고 펀드 수익률 악화를 이유로 최대 1조 원이 넘는 규모의 사모펀드 환매를 연기할 수 있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라임자산운용이 사모펀드 환매를 기약 없이 중단하기로 하면서 투자자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금융업계에서 커지고 있다.
주로 개인 투자자에게 최고 98%의 손실을 입힌 파생상품 사태에 이어 대규모 금융소비자 피해가 재발할 가능성에 금융당국도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에서 판매하는 투자상품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융위가 사모펀드 활성화를 목표로 투자자 모집 등 규제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상황인 만큼 은 위원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는 사모펀드가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모험자본의 주요 공급자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판단해 규제완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왔다.
은 위원장도 취임 전 인사청문회부터 “벤처기업 육성 등을 위해 사모펀드 관련된 규제를 완화히며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소신”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중소벤처기업 육성과 혁신금융정책 기조에 맞춰 모험자본 투자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은행보다 사모펀드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모펀드를 향한 금융당국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점은 이미 논란이 되고 있다.
조국 장관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 운용사가 투자처를 밝히지 않았고 사모펀드를 조성한 주체도 불확실한데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5년 시행된 사모펀드 규제완화로 은행의 파생상품 판매가 늘어 이번 파생상품 손실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까지 겹치면서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관련된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을 공산이 커졌다.
4일 열린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들은 대부분의 사모펀드 투자회사가 금융당국 검사를 거치지 않고 있다며 사모펀드와 관련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은 위원장은 “사모펀드와 관련해 나온 지적들을 살펴보겠지만 규제완화는 필요하다”고 맞섰다.
하지만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뒤에는 은 위원장도 태도를 바꾸면서 현행 제도에 허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투자자 보호 측면을 더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은 위원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당국이 사모펀드에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며 “최근 악재가 이어지고 있어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소비자 피해가 재발한다면 금융당국은 관리감독과 규제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사모펀드 규제완화가 금융산업의 필요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의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며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에 힘을 실었다.
은 위원장도 사모펀드와 관련한 금융정책에 변화를 예고한 만큼 금융위와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를 위한 사모펀드 규제 강화에 함께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 정무위는 21일 열리는 금융위와 금감원 종합국감에서 라임자산운용과 파생상품 손실에 금융당국의 대책과 재발 방지 노력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 위원장이 결국 사모펀드 활성화 목표를 접어두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추진하는 정책 방향을 설정해 발표할 공산이 크다.
파생상품 손실의 여파와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은 위원장이 당분간 사모펀드 활성화정책을 다시 검토하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20년 뒤에는 이번 사태가 사모펀드시장을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도록 제도를 잘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