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한국·아랍에미리트(UAE) 항공회담 결렬로 중동 항공사의 공세에서 한 발짝 비켜설 수 있게 됐다.
9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최근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중동 항공사들이 저가공세를 통해 세계 항공사들의 항공수요를 잠식하고 있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왼쪽)과 한창수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사장.
대한항공 관계자는 “중동 항공사들은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원가보다 더 싼 항공권 가격에 공급까지 대거 늘려 다른 나라의 항공시장에 공세를 가하고 있다”며 “중동 항공사들이 국내 항공시장을 잠식하게 되면 국적 항공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 운항을 정리해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중동 항공사들은 최근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을 바탕으로 중동~유럽, 아시아·태평양~중동 노선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초저가공세를 펴고 있다.
실제로 호주 최대 항공사인 콴타스항공은 중동 항공사의 공세에 밀려 호주~런던을 제외한 모든 유럽 직항 항공편의 운항을 중단했다.
독일의 루프트한자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로 향하는 노선 20여 개를 정리했고 프랑스의 에어프랑스는 모든 중동노선에서 철수하고 동남아시아 노선도 일부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서 UAE가 이번 한국·UAE 항공회담에서 UAE~인천을 잇는 운수권을 2배로 늘려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대형항공사들은 이번 한국과 UAE의 항공회담을 주시해 왔다.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만약 이번 항공회담에서 UAE의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면 중동 항공사들이 한국~중동 노선에서 저비용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한국~중동 노선 항공권이 저렴해지면 기존에 한국 대형항공사를 통하던 한국~유럽 직항 노선 수요가 한국~중동~유럽 환승 노선으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에 대형항공사로서는 이번 회담 결렬이 다행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 대형항공사들이 단거리 노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장거리 노선인 유럽 노선의 수요 감소를 막을 수 있게 된 것은 ‘가뭄의 단비’같은 일이 될 수 있다.
최근 국적항공사들은 일본여행 기피심리 확산에 따라 앞다투어 일본 노선 감축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8월 중순부터 일본행 노선 4편의 운항 항공기를 대형 항공기에서 중소형 항공기로 변경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인천~오사카,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 노선의 투입 항공기를 작은 항공기로 교체하고 부산~오키나와 노선 운항은 중단했다.
일본 노선 뿐 아니라 중국, 동남아시아 노선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저비용항공사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대형항공사의 독과점 노선이었던 중국 노선 역시 5월 진행된 운수권 배분에서 운수권이 저비용항공사에게까지 확대되면서 하반기부터는 인천~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황금 노선에서도 저비용항공사와 경쟁해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단거리 노선을 대체할 유럽 노선 등 장거리 노선 강화가 절실해진 상황인 셈이다.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유럽 노선은 대형항공사가 저비용항공사의 공세에 맞서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대표적 노선”이라며 “이번 항공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중동 항공사들이 중동~한국 운수권 증대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유럽 직항 노선을 지켜내는 것은 국적 대형항공사들에게 앞으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7일 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한국·UAE 항공회담에서 인천~두바이와 인천~아부다비 노선 증편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8일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