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헤지펀드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대해 오너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합병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똑같은 이유로 추진되는 SK와 SKC&C 합병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4일 SK그룹에 따르면 SK와 SKC&C는 합병 이후에도 1사2체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는 PMI(합병 뒤 융합) TF에서 결정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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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PMI TF는 성격이 다른 두 회사를 물리적으로 합치기보다 별도 체제로 운영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합병 이후 조대식 SK 사장과 박정호 SKC&C 사장이 각자대표를 맡아 기존사업을 그대로 이끌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옥이전도 없다. SK 인력은 기존대로 SK서린빌딩에서 근무하고 SKC&C 인력도 분당빌딩에서 그대로 사용한다.
회사 이름만 SK로 하나가 되지 경영은 이전과 달라지는 게 없는 셈이다. 처음부터 합병 시너지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최태원 회장을 위한 지배구조 강화만을 목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K와 SKC&C는 합병으로 신규 유망사업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재무구조 개선으로 경쟁력을 쌓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역시 오너의 지배력 강화라는 목적에 따르는 부수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합병 시너지가 있다고 말하지만 합병 이후에도 각자 따로 운영하기로 한 것은 결국 합병목적이 지배구조 강화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SK와 SKC&C 합병은 사업 시너지가 거의 없는 두 회사를 단순히 오너 지배력 강화를 위해서 붙여놓는다는 점에서 삼성그룹이 추진하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과 완벽히 닯았다.
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서 삼성물산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제일모직은 상장 이후 최고수준까지 주가가 올랐고 삼성물산은 실제 기업가치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주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결국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3%를 보유하고 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전혀 없다. 제일모직 주식가치가 높게 평가받고 삼성물산 주식가치가 낮게 평가받을수록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애초에 합병 자체가 이 부회장을 위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삼성그룹은 “제일모직의 패션사업과 삼성물산 상사부문이 시너지를 낼 것”과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과반 이상 확보해 바이오사업에 힘이 실릴 것”을 주장했으나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SKC&C와 SK도 마찬가지다. SK그룹은 두 회사 합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최 회장은 SK그룹 지주사인 SK 지분은 0.02%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지만 SK의 최대주주인 SKC&C 지분을 32.92%나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이 합병 이후 SK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 SKC&C 가치가 높아지고 SK 가치는 낮아질수록 최 회장에게 유리하다.
최 회장은 그동안 SKC&C 사업을 다각화하며 점점 몸집을 불려왔고 마침내 SKC&C가 SK 시가총액을 크게 앞선 시점에 흡수합병을 결정했다.
SKC&C가 SK를 흡수합병하는 비율은 보통주 기준 1:0.74이다. SKC&C 주식합병가액은 23만5073원, SK 주식합병가액은 17만3198원이다.
2013년 5월 이후 2년 동안 SKC&C 주가는 170% 상승했지만 SK 주가는 고작 17% 올랐다. 상승비율로만 보면 열 배가량 차이가 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