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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엽 팬택 전 부회장(가운데)이 2010년 7월 서울 상암동 팬택 R&D센터에서 스카이 스마트폰의 야심작 '베가(Vega)'를 선보이고 있다.<뉴시스> |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계속됩니다.’
팬택 1200여 명의 직원들이 최근 한 신문에 9단짜리 광고를 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한명한명의 이름이 새겨진 이 광고에서 직원들은 “지금 팬택은 멈춰서지만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멈추지 않는다”며 “팬택을 사랑해준 모든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팬택은 사라져가지만 직원들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팬택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법정관리 폐지 신청을 냈다. 팬택의 생명을 이어온 호흡기를 마침내 스스로 떼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팬택은 약 2주 뒤 법원이 최종 파산결정을 내리면 24년의 역사를 접고 사라지게 된다.
팬택직원들은 지난해 8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숨가쁜 나날들을 보냈다. 직원들은 경영정상화에 힘을 보태기 위해 월급을 자진해 반납하고 휴직신청을 하기도 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기사회생할 수 있으리란 희망도 버리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급여반납운동을 하고 지난 4월22일 고용유지도 포기하겠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들은 안타깝게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준우 팬택 대표는 “주주, 채권단, 협력업체를 포함한 이해관계자 여러분께 머리를 조아려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팬택직원들이 5천 원씩 십시일반 모아 낸 광고는 팬택의 이름을 건 사실상 마지막 광고가 됐다. ‘단언컨대’라는 카피문구를 유행시키며 대중들에게 베가 스마트폰의 세련된 이미지를 남겼던 과거 팬택의 광고를 생각하면 씁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경기도 김포의 팬택공장도 썰렁하긴 마찬가지다. 한때 500여 명이 넘었던 생산인력들 대부분이 무급휴직을 떠나 결국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30여 명 남짓 남아있는 공장직원들은 절반 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월급이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더욱 막막하기 때문이다. 팬택공장은 6월부터 전면 가동을 중단한다.
팬택은 맥슨전자 영업사원 출신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1991년 창업했다. 박 전 부회장은 당시 엔지니어 4명을 포함해 6명으로 회사를 차려 무선호출기(삐삐)사업에 뛰어들었다.
팬택은 1997년 매출이 760억 원 가량에 이를 정도로 무섭게 성장해 시장변화에 맞춰 휴대폰 생산에도 뛰어들었다. 미국 모토롤라로부터 1500만 달러를 투자받고 하이닉스전자 휴대전화사업부에서 분사된 현대큐리텔도 인수했다.
팬택은 SK텔레콤 전용 브랜드 ‘스카이’를 내놓고 말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2006년 연매출 3조 원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팬택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팬택이 위기를 맞은 것은 2005년 SK텔레텍을 인수하고 공격적으로 해외에 진출한 뒤부터다. 2006년 1차 워크아웃을 맞았으며 5년 만에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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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택직원들이 최근 한 일간지에 낸 광고 |
팬택은 한때 LG전자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2위로 올라서기도 했으나 2012년 3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위기가 시작됐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박 부회장도 2013년 9월 경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
팬택의 몰락은 기술력만으로 변화하는 스마트폰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됐다. 또한 재벌기업 ‘골리앗’에 맨주먹으로 맞선 ‘다윗’의 패배이기도 하다.
샐러리맨 출신으로 한때 창업신화를 썼던 박 전 부회장은 지난달 국내 현금수송업체인 발렉스코리아를 130억 원에 인수하며 재기의 꿈을 키우고 있다.
박 전 부회장 일가 소유의 화물운송중개업체 PNS네트웍스를 통해 발렉스코리아 지분 80%를 인수한 것이다.
발렉스코리아는 은행 등을 대상으로 하루 2천억 원 이상의 현금을 수송하며 전국 4천여 대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을 관리하는 회사다. 지난해 441억 원의 매출과 23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박 전 부회장이 발렉스코리아 지분을 인수한 데 대해 물류사업을 통해 재기에 나선 것이라고 관측한다.
박 전 부회장은 팬택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지난해 스포츠토토 사업권 입찰에 뛰어들었다 실패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