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 체결식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첫 발부터 삐끗하면서 이번 인수를 추진한 두 사람이 노조 반발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노조에 이어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실사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현장실사는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3일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핵심 생산시설인 옥포조선소의 현장실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대우조선해양 노조와 시민단체 등에 가로막혔다.
노조는 현장실사 기간이 끝나는 14일까지 24시간 실사단의 진입 여부를 감시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도 회사의 물적분할에 반대하며 보름 연속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또 주주총회를 무효화하기 위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경찰력이 투입되면 총파업에 들어가겠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노조의 거센 반발이 지속되고 지역사회와 정치권까지 노조와 한 목소리를 내면서 자칫 인수합병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그동안 현대중공업 노조와 대우조선해양 노조가 보여줬던 과거 전적과 성향 등을 봤을 때 이 정도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하고 대응도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동걸 회장과
권오갑 부회장의 현실인식이 너무 안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인수는 조선사가 조선사를 인수하는 만큼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노조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가능했다. 물적분할과 법인 신설, 신설법인 본사의 서울 이전 등도 노조와 지역사회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노조는 물적분할이 이뤄지면 한국조선해양에 대부분의 자산이 가고 현대중공업은 생산공장으로 전락해 앞으로 구조조정과 근로조건 악화, 단체협약 미승계 등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울산시는 한국조선해양의 본사를 서울에 두면 울산지역의 연구개발 역량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고급인력이 유출되는 등의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법인지방소득세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권오갑 부회장은 물론
이동걸 회장도 노조와 지역사회를 설득할 방안을 비롯해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특히 이 회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노조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도 노조를 향해 ‘폭력적으로 나오면 대화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 등 노조를 자극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3월 경남도청이 있는 경남 창원까지 내려가 한진중공업만 방문하고 대우조선해양을 찾지 않았다.
이 회장과 권 부회장은 이번 거래에서 사실상 전면에 섰다. 두 사람은 3월 초 주변의 예상을 깨고 공개적으로 본계약도 맺었다.
당시 내부 반발이 워낙 강해 조용히 본계약을 맺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공개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계약식을 진행하면서 자신감을 내보인 셈이다.
권 부회장은 이번에 신설된 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게 되는 만큼 권 부회장의 어깨가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이달 중순까지 실사를 마무리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공정위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EU와 일본, 중국 등 최소 10개 경쟁국의 기업결합심사를 제각각 통과해야 인수가 마무리된다.
당초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은 올해 안에 거래를 마친다는 계획을 세워뒀으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이런 일정은 어려울 수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이 매각과 인수를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한 건 당연하지만 그 이후의 대처를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며 “지금 노조의 반응은 분명히 너무 과격한 점이 있지만 결국 상황을 이렇게까지 키운 건 현대중공업과 산업은행의 안일한 인식”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