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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
성동조선해양이 법정관리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덕훈 수출은행장이 성동조선해양을 단독으로 3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안건이 채권단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 성동조선해양은 잠시 숨만 돌렸을 뿐 추가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덕훈 행장은 첩첩산중의 상황에 처해 있다. 성동조선해양뿐 아니라 수출입은행이 관리하고 있는 SPP조선과 대선조선도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 세 조선업체는 주로 중소형상선을 건조한다. 중소형상선은 국내조선업체들이 저가수주로 영업손실을 보는 대표적인 선박분야다.
이 때문에 세 조선사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덕훈 행장도 이 세 조선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 이덕훈, 성동조선해양 한 고비 넘겨
수출입은행이 성동조선해양에 3천억 원을 단독지원하는 안건이 28일 통과됐다. 모든 자금마련과 손실분을 수출입은행이 책임지는 방식이다.
수출입은행은 채권단이 분담하는 방식으로 성동조선해양에 추가자금을 지원하는 안건을 상정했지만 우리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성동조선해양은 수주를 받고도 배를 지을 돈이 없어 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할 상황이었다.
수출입은행이 성동조선해양에 3천억 원의 자금을 단독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채권단 동의를 이끌어 내 성동조선해양은 법정관리 신청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러나 이 3천억 원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 자금은 선박건조 대금 등으로 7월 말이면 모두 소진된다. 성동조선해양은 그때 또 추가자금 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수출입은행의 이번 지원은 선택의 시간을 뒤로 잠시 미룬 것에 불과하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성동조선해양은 현재 75척의 수준잔량이 남아있다. 금액으로 모두 4조5천억 원에 이른다. 세계 조선업계 수주잔량 순위로 9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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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조선해양은 지난 22일 200번째 로드아웃을 성공시켰다. |
성동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저가수주 선박으로 평가받는 중소형상선이다. 그래서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업체들의 저가공세로 성동조선해양과 같은 중소형 조선업체들은 이윤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국내 중소형 조선업체들의 이런 상황을 놓고 업계 관계자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상황이라고 본다.
성동조선해양은 5년 넘게 채권단 자율협약 상태에 있으면서 채권단으로부터 이미 2조 원을 지원받았다. 앞으로 얼마가 더 돈이 투입돼야 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 이덕훈, 진퇴양난
이덕훈 행장이 성동조선해양을 놓고 어떤 선택을 하든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이 성동조선해양을 버린다면 국책은행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 성동조선해양의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판단해 국고를 탕진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
국책은행으로서 성동조선해양을 시장논리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동조선해양에 8500명의 직원과 2만4천여 명의 협력업체 직원들의 일자리가 걸려있다. 통영의 경제에 불어 닥칠 후폭풍과 경남지역 정치권의 반발도 불 보듯 뻔하다.
경남도의회와 통영시의회, 통영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이군현 새누리당 의원 등은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출입은행이 무한정 성동조선해양에 돈을 쏟아 부을 수도 없다. 수출입은행은 국민의 세금이 운영의 근간이다.
수출입은행이 지난 4년 동안 부실기업에게 대출을 해줬거나 보증을 제공한 금액만 1조3천여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4천억 정도만 회수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모든 손실분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
이덕훈 행장은 국책은행장으로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 또다른 무거운 짐, SPP조선과 대선조선
이 행장의 고민은 성동조선해양에 그치지 않는다.
SPP조선도 2010년 5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었다. 그동안 은행들이 SPP조선에 지원한 돈만 3조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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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조선해양 통영야드 전경 |
SPP조선의 채권자 대표는 우리은행이다. 그러나 SPP조선에 대한 은행별 채권비율은 수출입은행이 제일 많다.
수출입은행이 32.6%, 우리은행 20%, 무역보험공사 14.4%, 신한은행 7%, 서울보증보험 2.9% 순이다.
SPP조선은 3년째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영업손실은 2012년 586억 원에서 2013년 1586억 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매출 1조1853억 원에 891억 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SPP조선의 수주잔고도 줄고 있다. 수주잔고는 2012년 세계 10위였는데 올해 29위로 내려앉았다.
채권단은 SPP조선에 대해 추가수주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4월 초 4850억 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대선조선도 자율협약중이다. 대선조선의 최대주주도 수출입은행으로 67.2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대선조선에 들어간 은행 자금도 8804억 원에 이른다.
대선조선은 지난해 매출 2451억 원, 영업손실 354억 원을 기록했다.
SPP조선과 대선조선 모두 자본금보다 부채가 더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있다. 회생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동조선해양과 큰 차이가 없다.
◆ 이덕훈, 혼자 선택할 수 있나
업계 관계자들은 성동조선해양이 이미 수주한 물량을 다 건조하려면 최소 1조2천억 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한다.
수출입은행이 채권단의 반대를 뚫고 이 자금을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이 채권단의 반대에도 지원을 결정하면 다른 채권자들은 반대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수출입은행은 이들의 채권도 사줘야 한다.
이 행장으로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다.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을 삼성중공업이나 한진중공업에게 위탁경영을 의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나 한진중공업이 성동조선해양을 위탁경영한다면 이 행장의 고민은 한결 가벼워지게 된다. 위탁경영 뒤 인수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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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경해서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우리은행 본사 앞에서 거리행진하는 성동조선조합원들사진=금속노조 경남지부 |
하지만 삼성중공업이나 한진중공업이 성동조선해양을 인수할 의사가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만약 삼성중공업이나 한진중공업이 성동조선해양을 인수한다면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부채를 대폭 탕감해 줘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세금으로 특정기업에 이득을 줬다는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 있는 대안 중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을 뿐 위탁경영 추진은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동조선해양과 다른 조선업체의 합병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회사의 몸집이 커지면 규모의 경제를 갖춰 부실기업의 체질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덩치가 큰 SPP조선,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을 놓고 합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업계에서 우리은행이 수출입은행에 SPP조선과 성동조선해양의 합병을 제안했고 산업은행도 STX조선과 성동조선해양의 합병을 타진했다는 말이 나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 현실적으로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다. 산업은행 관계자와 수출입 관계자 모두 "공식적으로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 조선업계를 재편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개별 은행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