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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그룹 재건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호산업 본입찰이 무산되면서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에게 금호산업을 직접 매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을 눈 앞에 둘 수 있게 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산업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이다.
박 회장은 2012년 2200억 원의 사재를 털어 금호산업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 대가로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산업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장받았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도 보유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채권단이 올해 안에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할 계획인데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도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
박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무기로 ‘적정한 가격’을 내세우며 금호산업이나 금호타이어를 헐값에 인수하려고 한다.
박 회장이 금호아시나아그룹 재건에 성공하게 되면 경영에 실패한 오너가 우선매수청구권을 앞세워 겨우 살려낸 그룹을 되찾는 사례를 만들게 된다.
이는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두 사람은 실패한 경영에 책임을 지면서 회사를 떠나보냈다.
◆ 원금도 못갚고 금호산업 되찾나
27일 재계에 따르면 금호산업 채권단은 오는 7월부터 금호산업 매각가격을 두고 박 회장과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한다.
재계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얼마에 되찾느냐에 주목한다.
대우건설의 재무적투자자였던 금호산업 주주들은 2010년 금호산업 워크아웃 당시 금호산업 주식으로 주당 6만 원에 출자전환했다. 주당 6만 원 기준으로 현재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을 단순히 계산하면 1조1천억 원에 이른다.
채권단이 최소 1조 원은 받아야 원금이라도 건질 수 있는 셈이다. 채권단이 금호산업 인수전이 시작될 때부터 주장했던 매각가 1조 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박 회장이 금호산업 지분을 1조 원에 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박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호반건설이 제시한 가격을 언급하며 금호산업 가격을 낮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 회장은 호반건설이 본입찰에서 제시했던 6007억 원(주당 3만907원)을 기준가격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박 회장이 금호산업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지분 50%+1주의 가격은 5300억 원 안팎에 그친다.
박 회장이 이 가격으로 금호산업을 되찾으면 국내 워크아웃 사상 최초로 경영에 실패한 오너가 부채 원금의 절반밖에 갚지 않고 다시 기업을 되찾는 사례를 만들게 된다.
이 손실은 그대로 채권단의 몫이 된다. 특히 산업은행은 국민의 세금을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되살린 뒤 고스란히 그룹을 위기로 내몬 오너에게 다시 돌려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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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해 5월 페브리스 브레지에(Fabrice Bregiere) 에어버스 CEO와 함께 A380 1호기의 비즈니스 스마티움 좌석에 앉아 시연해보고 있다. <뉴시스> |
◆ 그룹 재건의 무기, 우선매수청구권
박삼구 회장이 헐값에 금호산업을 되찾을 가능성이 커진 배경에 박 회장이 보유한 우선매수청구권이 자리잡고 있다.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한 탓에 호반건설을 제외한 다른 곳이 금호산업 본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박 회장이 보유한 우선매수청구권은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에 가장 먼저 살 수 있는 권한이다. 이 때문에 다른 곳에서 금호산업을 인수하기 위해서 박 회장이 낼 수 없는 금액을 써내야 하는 만큼 금전적 부담이 매우 크다.
우선매수청구권은 사실상 경영권 확보를 보장하는 수단이나 마찬가지다. 삼양식품, 한라건설, 한진중공업 등 2000년대 이후 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던 인수전에서 거의 대부분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쪽이 승리했다.
채권단이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을 때부터 금호산업은 결국 박 회장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던 셈이다.
그러나 박 회장이 보유한 우선매수청구권이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 꼬리표처럼 붙는다.
채권단이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장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묻지도 않은 채 옛 오너에게 기업을 돌려주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우선매수청구권 부여는 정당했나
박 회장이 부여받은 우선매수청구권은 은행연합회가 정한 ‘채권금융기관 출자전환 주식관리와 매각준칙’에 따른 것이다.
매각준칙 제12조(옛 사주에 대한 경영권 부여) 1항에 따르면 부실책임이 있는 옛 사주는 원칙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하되 사재출연 등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에 대한 사후평가를 통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
이 때 매각준칙은 법률처럼 강제로 적용되는 규정이 아니다. 경영정상화 노력의 판단잣대도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박 회장을 두고 특혜 논란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박 회장은 2013년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2013년과 2014년 각각 자율협약에 들어간 STX조선해양과 동부제철에 대해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이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받지 못했다.
산업은행은 당시 형평성 논란이 빚어지자 “박 회장은 수천억 원의 사재를 내놓으면서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려 했지만 강 회장은 그런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박 회장이 2200억 원의 사재출연과 채권단의 100대 1 감자 결정에도 손실을 감수하면서 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회장의 사재출연은 금호산업 지분이 감자로 사라지자 지분을 다시 획득하기 위한 성격이 있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강덕수 전 회장은 출연할 수 있는 사재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박 회장과 직접 비교가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산업은행은 과거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현대그룹에 경영실패의 책임을 물어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당시 현대그룹이 정몽헌 회장이 44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 경영정상화를 위해 힘썼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3300억 원 사재출연, 정상화 노력인가
매각준칙에 따르면 박 회장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인정받는다면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룹을 위기로 몰아간 원죄가 있는 만큼 주주와 기업구성원의 반감을 물리칠 정도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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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
박 회장이 아들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과 함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에 투입한 자금은 모두 3300억 원이다.
박 회장 일가의 사재출연이 상징적 의미에 그칠 뿐 실제 경영정상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시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계열사들이 대규모 인력감축과 임금동결 등 거센 후폭풍을 맞았던 데 비해 기업을 구조조정으로 몰고 간 사주의 희생은 적었다는 것이다.
김기식 당시 민주당 의원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대주주의 실질적인 자구노력이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채권단이 박 회장 등 오너 일가에게 유상증자를 통해 금호산업 지분 14%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배권을 돌려준 것은 특혜”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채권금융기관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지원한 내역을 살펴보면 출자전환 3조1340억 원, 신규여신 1조8301억 원 등 총 4조9641억 원인데 금호아시아나그룹 대주주들의 자구 노력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자의 유상증자 3930억 원가량으로 전체의 8%도 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2012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주주 지위에 올랐을 당시에도 경영실패를 초래한 옛 사주의 복귀 명분이 약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박 회장에 대해 “그룹을 위기에 빠뜨리고도 기존 보유주식을 (채권단의 감자로) 잃고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던 것 외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며 대주주 복귀에 반대했다.
반면 채권단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추가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처라고 맞섰다.
◆ 납득하기 어려운 금호타이어 우선매수청구권
금호타이어의 경우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2010년 2월 산업은행은 박 회장에게 금호타이어 경영권을 보장하고 우선매수청구권까지 부여하는 방안을 문서로 합의해 줬다.
두 달 뒤 금호타이어 경영정상화 방안(워크아웃 플랜)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당시 우리은행이 박 회장에게 경영권과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놓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맞섰지만 결국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산업은행은 과거 구조조정 사례에서도 명백한 부정부패가 없는 경영진은 대부분 유임됐다며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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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오른쪽)이 지난 2월 열린 2015 한일우호 관광교류의 밤 행사에서 니카이 도시히로 일본전국여행업협회 회장 등과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뉴시스> |
당시에도 산업은행의 행보가 구조조정촉진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법은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통해 최대주주가 된 경우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경영 활성화를 위해 채권단 보유지분을 능력있는 제3자에게 매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 것은 매각준칙에도 어긋난다. 매각준칙에 옛 사주의 경영정상화 노력에 대한 사후평가를 통해 우선매수청구권을 줄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당시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에 거의 사재를 출연하지 않은 상태였다.
박 회장이 사재 1100억 원을 출연해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가한 것은 2012년의 일이다.
◆ 실패한 경영자의 회사 되찾기 선례 만들어지나
일각에서 박 회장의 사례가 실패한 경영자에게 기업을 쉽게 돌려주는 나쁜 선례를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워크아웃 등 기업 구조조정이 도입취지와 달리 실패한 대주주와 경영진이 자리를 보전하고 기업의 부실을 털어내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2006년 금호산업의 대우건설 인수를 주도했다. 당시 금호산업은 힘에 부치는 데도 약 6조 원을 들여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결국 무리한 차입에 따른 경영난으로 2009년 말 대우건설을 되팔았다.
박 회장은 2008년 대한통운도 인수하며 재계 서열 8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대한통운 역시 무리한 인수였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0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한 원인을 제공한 만큼 그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부실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오너에게 다시 회사를 돌려준다는 나쁜 선례만 남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